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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현상변경과 현상유지의 힘겨루기 / 이용인

등록 2018-07-19 17:58수정 2018-07-20 09:35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금방이라도 한반도에 극적 변화가 있을 것 같았던 3~6월이 지나고 정세가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분위기가 워낙 고조됐던 터라, 지금의 ‘조용한’ 상황이 되레 어색하게 느껴진다.

지금 국면을 큰 틀에서 보면 현상유지와 현상변경 간의 힘겨루기로 정의할 수 있다. 밀치는 힘과 당기는 힘이 팽팽하면 물체가 그 자리에 있게 되는 물리 현상과 엇비슷하다.

북한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체제 안전 보장을 목표로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현상변경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사에서 가장 비전통적인 아웃사이더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현상유지의 틈새가 벌어졌다. 4~6월은 그렇게 새로 열린 문틈에 대한 기대감이, 변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불안감을 누른 시기였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상회담 한달여 만에 현상유지라는 뿌리 깊은 관성이 세를 얻고 있다. 미국은 ‘주기만 하고 받은 건 없다’는 여론에 밀려, 자신이 줬거나 줄 것들의 값어치를 너무 높게 매기고 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을 넘어 ‘협상 실패’에 따른 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면 협상은 더 나아갈 수 없다. 책임론에 대한 두려움은 현상유지의 심리적 근원이었다.

예컨대, 종전선언은 중대한 비핵화 조처가 나올 때까지는 내줄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분위기다. 정치적인 상징적 행사에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값어치를 높인다. ‘주한미군 주둔 문제나 유엔사 해체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평화체제 문제가 너무 빨리 의제에 오를 수 있다’는 논리가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종전선언이 너무 무거워져 협상의 지렛대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제 하중을 견디지 못해 주저앉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실무협상으로 들어가면 협상 당사자들인 관료들의 책임론에 대한 두려움, 주류 여론의 과거 논리 답습, 현상변경에 따른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미국뿐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똑같은 현상일 것이다.

중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한반도 현상유지가 명확한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의 세 차례 방중에 대한 답례로 북-미 정상회담 뒤 시진핑 주석이 불원천리하고 북한을 방문할 것 같았지만 가시적 움직임은 없다고 한다.

북한이 ‘중대한 비핵화 조처’를 단행해 북-미 관계가 급속히 다시 진전되거나, 한반도 정세가 악화돼 다시 긴장이 고조되거나, 미-중 간 무역전쟁이 더욱 격해지는 상황이 아니라면 “시 주석이 북한을 방문할 절박성은 없다”고 워싱턴의 한 중국 전문가는 전했다. 중국의 전통적 한반도 정책 기조에 비춰보면 놀랄 만한 내용도 아니다.

결국 현상변경을 추동하고 그 방향성을 정하는 일은 점점 남북의 몫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핵·미사일 시설 신고를 결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신고는 곧 폐기의 이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고 없이 앞으로 전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그토록 오랫동안 추구해온 현상변경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싶다.

우리 입장에서도 유엔총회 같은 9월의 시간표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11월 중간선거가 지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지금의 유동적 정세 때문에 한국 정부가 신중히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중간선거 이후의 불확실성이 더 높기 때문에 지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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