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부역 앞 도로를 한 할머니가 한낮의 땡볕을 손수건 한 장으로 겨우 가린 채 폐지를 고물상으로 가져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설·추석 명절과 ‘부처님 오신 날’이 국가의 공식 휴일이어서 음력의 법적 근거가 오래전에 마련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음력을 양력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천문법이 법률로 제정된 건 8년 전인 2010년 7월이다. 1896년 양력을 대한제국의 공식 역법으로 반포한 지 114년 만의 일이다. 천문법 제5조는 “천문역법을 통하여 계산되는 날짜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하되, 음력을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음력은 엄밀하게는 태음태양력을 가리킨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천문법에 따라 음력 운용지침을 제정한 건 다시 7년이 흐른 지난해 7월이다. 여기에는 정월대보름, 단오, 칠석날 같은 세시풍속의 기념일 외에 한식, 삼복, 토왕용사를 전통 절일로 정하고 있다. 삼복더위의 초복·중복·말복이 민간의 ‘잡절’에서 공적 명일로 복권된 것이다.
복날 계산은 복잡하다. 초복(중복)은 “하지 후 세번째(네번째) 경일이며, 하지가 경일이면 그날을 첫번째 경일로 정한다”고 돼 있다. 경은 10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일곱째를 말한다. 말복은 입추 후 첫번째 경일로 돼 있어, 종종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는 월복인 때가 있다. 올해도 중복(7월27일)과 말복(8월16일) 사이가 20일이다. 월복일 때는 삼복더위가 30일로 늘어나는 셈이다. 실제로 월복일 때가 아닐 때보다 2.5배 이상 많다. 말 그대로 여름은 ‘덥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고려 때는 삼복에 관리들한테 사흘 휴가를 주고 임금이 공사를 못 하도록 지시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삼복에 공역을 금지하고 관리들한테 얼음을 나눠줬다는 기록이 있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로 더윗병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낮 땡볕 속 작업을 강제로 금지하는 비상대책이라도 세워야 하지 싶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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