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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기무사보다 ‘계엄 변호 세력’이 더 놀랍다

등록 2018-07-25 18:19수정 2018-07-26 09:21

김종구
편집인

국군기무사령부라는 이름에는 <한겨레>도 약간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군기무사령부는 1990년에 터진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이름이 바뀐 것이다. 그 사건 보도를 주도한 게 한겨레였다. 그러나 기무사의 환골탈태 약속은 휴짓조각이 됐고, 이제는 기무사 조직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기무사 명칭에 약간의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다고 평소 농담을 해온 처지에서 느끼는 감회는 남다르다.

기무(機務)라는 말은 ‘근본이 되는 일’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政務)’를 의미한다고 기무사는 홈페이지에 설명해 놓았다. 조선 말기 ‘통리기무아문’까지 거슬러 올라가 조직 명칭의 근원을 설명한다. 하지만 기무사는 일을 하는 ‘근본’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정무 감각’도 빵점이었다. 세상의 변화에 아둔했던 조선 말기 벼슬아치들보다도 못한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

단연코 말하지만 ‘기무사는 계엄을 검토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계엄 문제를 검토할 작정이었다면 핵심은 ‘군이 나서야 하는가 마는가’에 대한 판단이어야 했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 탱크와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군이 등장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유혈사태를 수습할 능력은 있는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시대에 과연 총칼로 민심을 억누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민중의 힘에 밀려 무력진압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나라가 어떻게 되고 군의 운명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진정한 의미의 검토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기무사가 정신이 온전히 박힌 조직이라면 이런 것들을 면밀히 따진 뒤 ‘계엄 절대 불가’라는 ‘검토 의견’을 내놓았어야 옳다. 그런데 기무사는 가장 기초적인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승리할 수 없을 게 뻔한 전쟁 계획을 세우는 군대만큼 어리석은 군대도 없다.

더 놀라운 것은 ‘무뇌아 기무사’가 아니라 기무사 계엄 계획을 변호하고 나선 세력들이다. “나라가 무너질 상황을 상정한 대비 검토조차 없다면 군은 필요 없는 존재일 것” 따위의 주장을 접하며 아득한 절망감이 몰려온다. 군이 국민을 향해 총칼을 겨누는 일은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진보-보수를 떠나 온 국민의 합치된 의견일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기무사가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운 배경에는 이런 든든한 우군의 존재가 버티고 있다.

결국 계엄 계획은 기무사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군대까지도 동원하겠다는 무도한 정치권력, 그 권력을 지키는 것이 충성과 애국이며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여기는 정치군인들, 그리고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일부 보수 세력의 합작품인 셈이다. 국정 혼란, 국가 안보 위기, 군 차원 대비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단어들은 이들의 ‘공용어’다. 이들은 심각한 과거 망각증 환자들이고, 입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외치지만 총부리를 언제라도 남쪽으로 돌릴 수 있는 이적행위자들이고, 대한민국이 만신창이가 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맹동 모험주의자들이다.

한 보수신문은 심지어 사설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 정권은 만약 지금 대규모 폭동이 발생해 청와대 등이 점거되고 경찰이 이를 진압할 수 없을 경우, 군이 국가 질서를 회복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면 그것도 내란 음모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다.” 내란음모죄 여부를 떠나 그 질문에 굳이 답을 하자면 이렇다. 어떤 정권이든 민심이 등을 돌리고 군이 치안유지에 나설 정도의 상황이 되면 그 정권은 존립할 가치가 없다고. 그리고 이 정권에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기무사 계엄 계획을 변호하는 세력은 5·18 광주 민주항쟁에 대한 군의 무력진압을 미화한 세력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들은 총과 탱크, 공수부대를 앞세워 광주를 피로 얼룩지게 한 신군부를 변호하고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았다. 그런데 그것은 흘러간 과거가 아니었다. 시위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몰아갔던 1980년의 시각은 이번에는 촛불시위 격화를 “나라가 무너질 상황”으로 규정하고 기무사의 계엄 모의를 당연하다고 우기는 모습으로 재연됐다. 만약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다르게 나와 계엄이 현실로 나타났다면 그들은 분명히 계엄군을 옹호했을 것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 파동을 지켜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이유다. 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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