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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포용적 성장, 우린 누구를 배제하고 컸나?

등록 2018-08-07 18:16수정 2018-08-08 18:16

주진형

문 대통령은 포용적 성장을, 수혜층이 소수에 그치고 다수가 배제되는 배제적 성장의 반대 개념이라고 했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 배제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그 얘기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홍장표씨 대신 윤종원씨를 새 경제수석보좌관으로 임명한 것이 정부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를 뜻하는 것인지를 두고 온갖 추측이 오가고 있다. 일부 진보진영 지식인들은 정부의 우클릭을 우려하는 공동성명을 내기까지 했다.

일리는 있다. 특히 요즘 김동연씨가 재벌들을 차례로 만나고 다니면서 투자계획을 받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도 구태의연한지 감탄할 정도다. 그제는 한술 더 떴다. “삼성 측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단다. 기업인들이 사업계획을 준비할 때 진정성을 갖고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뻔하면서도 신기한 소리인가? 결국 자기에게 은근히 흘린 약속을 진짜 실행하라는 다그침같이 들린다. 나는 진정성 운운하는 사람들을 안 믿는 버릇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 학자들이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새 정부가 내건 경제정책 3종 신기(神器)가 워낙 허술해 보였기 때문이다. 허술한 것을 갖고 고집부리느니 차라리 다른 것으로 갈아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새 정부 출범 후 1년이 지난 지금, 소득주도성장은 공허한 소설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아니 이제 보니 최저임금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거였네? 제로섬이긴 해도 어쨌든 최저임금 인상 덕분에 소득이 느는 사람도 있으니 정책의 긍정적 효과, 즉 소비 증대 효과가 날 때까지 기다려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같아선 그것도 어려울 것 같다.

사업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결정하고, 주택이나 내구재 구매를 할 때 우리는 미래 상황을 예측하기 마련이다. 거기엔 경기 예측과 경제의 3대 가격, 즉 물가, 이자, 환율에 대한 예측이 중요하다. 지금같이 최저임금을 지역, 업종, 나이를 불문하고 급격히 상승시키면 그 충격이 경기와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온갖 다른 성격의 노동을 하고 다른 임금을 받던 수백만명의 사람 값이 모두 같아졌다. 사람들이 원래 생각했던 계획이 엉클어졌고, 불확실성이 너무 커졌다. 이러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걸 정부도 느끼기 때문에 부총리가 저러고 다니는 것 아니겠는가?

공정경제는 처음에는 프랜차이즈 불공정 계약을 타깃으로 삼아 시작은 잘했지만 그 후 함흥차사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 정부에서 재벌개혁의 추진 속도가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것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법 개정을 해야 한다면 그 법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 아닌가? 사실, 시민단체 출신 학자 몇명이 정부에 들어간다고 한국 사회에서 재벌개혁이 될 것이었으면 진즉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벌개혁은 공정거래법 관련 조항 몇개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닌데 경제부처의 핵심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 관료를 박아놓고 공정거래위원회에만 재벌개혁을 맡기겠다는 생각부터가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니었는지 싶다. 일은 원래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혁신성장은 시작부터 워낙 아무 내용이 없었다. 비판하려고 드는 것 자체가 객쩍은 일이다. 아니 언제 누가 혁신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 있나? 하세요, 그냥 하시라구요! 그런데 그걸 관료들이 나서서 주도하겠단다. 아, 그건 하지 마세요, 마시라구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3종 신기가 이렇게 어설프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런 면에서 문 대통령이 지난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포용적 성장’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에 도리어 약간 고무받았다. 문 대통령은 포용적 성장을, 수혜층이 소수에 그치고 다수가 배제되는 배제적 성장의 반대 개념이라고 했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 배제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그 얘기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국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크게 보아 세 그룹이 있다.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다. 그리고 노년층이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이 있다.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 대비 거의 반에 불과한 건 다들 안다. 노인 빈곤율이 47%로 옆 나라 일본(22%)의 두 배가 넘는다는 건 일부만 안다.

그러나 남녀 고용률이 각각 70%와 50%여서 그 격차가 20%에 달하고, 여성과 남성의 중위임금 격차가 37%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이나 일본(27%)보다도 높은 건 대부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이건 그냥 숫자가 아니다. 사람들 얘기다. 고용량 상황판이나 허황한 예송논쟁보다 이런 거를 대통령이 얘기하면 좋겠다.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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