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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한국은 ‘삼권분립’을 해본 적이 없다

등록 2020-01-07 18:59수정 2020-01-08 09:46

주진형 ㅣ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의 전제국가 체제의 흔적을 느낄 때가 많다.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란 역시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곁에 있었던 과거 체제의 일부가 새로운 체제로 전환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삼권분립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누어 상호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제도다. 그러나 한국은 서구적인 삼권분립이 한 번도 제대로 작동된 적이 없는 사회였다. 제도는 있지만 말과 실제가 따로 돌아간다.

삼권분립을 하려면 우선 삼권을 분리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따로 각각 세워야 한다. 그러나 역사상 한국은 국가 권력이 실제로 이렇게 분리되어 본 적이 없다. 행정부 수장에게 통치권이 집중되어 있다. 입법부가 법을 만드는 기능이 대단히 약하여 입법 활동의 대부분이 행정부가 만든 법안을 일부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역할에 머문다. 그 법도 세부사항을 지나치게 행정부의 재량에 맡긴 형태로 통과되기 일쑤다. 이런 것들은 그동안에도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지만 사법부에서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독점하여 법원을 관료조직처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최근에야 생겼다.

삼권이 분리가 안 되어 있으니 분립이 안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공천에 행정부 수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게 아니면 요새처럼 청와대 직원들이 우르르 공천을 받겠다고 나오는 현상을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지명하고 법관 인사권을 독점한다. 판사들은 자신을 젊은 시절 공채시험을 봐 들어온 뒤 승진에 매달리는 국가 공무원으로 인식한다. 최근 판사 류영재씨는 최근 어느 강연에서 아주 적절한 지적을 했다. 사법농단 사건은 법원이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분업”을 하려고 한 사건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소송을 일부러 7년을 끌고, 통상임금,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등을 자기가 마치 행정부 일원인 것처럼 행동하고 판결했다. 행정부의 통치나 국정이 헌법을 위반했을 때 법원이 이를 지적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삼권의 일원으로서 통치에 참여하려고 한 것이라는 젊은 판사의 말에서 미래 세대의 희망을 본다.

나는 한국에서 삼권분립이 실제로 운영되는 모습에서 역대 중국 왕조와 조선시대 전제정치의 삼권분할을 느낀다. 중국 문명 하에서 전제군주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자기 하나에게 집중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이 권력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나누어 통치했는가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나누었을까? 한나라 시절부터 중국의 황제는 자기의 권력을 군사권, 행정권, 감찰권으로 나누고, 과거를 통해 뽑은 관원에게 이 권력을 위임해 통치했다. 군사권은 행정권과 분리하여 관료에게 위임하지 않고 대부분 황제가 직접 관장했다. 사법권을 별도의 권한으로 인식하지 않고 행정권의 일부로 간주해서 행정부 관료가 법관 노릇을 했다. 그리고 감찰권은 군사권과 행정권 못지않게 중요한 권력으로 간주하여 행정 관료를 황제의 별도 직할 조직인 감찰관을 통해 감시했다. 이게 중국 중앙집권체제의 삼권분할 방식이다.

나만의 제멋대로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은 권력을 군사권, 행정권, 감찰권으로 나누어 운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 방식은 1987년 군부독재가 종식된 뒤에도 여전히 우리들 곁에 남아 있다. 김영삼씨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손을 본 것이 하나회 숙청을 통한 군사권 확보였지만 그 뒤에도 국방부는 여전히 군인들 세상이다.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은 아직도 있어 본 적이 없다. 감찰이 기세등등한 것도 여전하다. 정권을 잡은 사람은 국정원, 검찰, 경찰, 그리고 감사원을 자신의 감찰 도구로 사용해왔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경찰과 검찰 사이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1987년 헌법은 법원을 과거와 마찬가지로 대법원장 휘하의 관료조직으로 남겼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짓이었지만 당시엔 별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독재자가 사라져도 독재체제를 뒷받침하던 세력이 저절로 없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은 근래까지 독재자가 국가 권력을 군사권, 행정권, 감찰권으로 나누어 동아시아식 삼권분할 체제를 운영하던 나라였다. 이것이 우리 정치문화의 원형이라는 것을 인식할수록 서구식 삼권분립 체제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부터 손을 봐야 하는지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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