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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누더기 선거법 개정안, 공약으로 걸어라

등록 2020-03-03 18:31수정 2020-03-04 09:35

주진형 ㅣ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이번 국회 선거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정치권은 온갖 푸닥거리 굿을 해왔지만 이번은 정말 유난하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새로운 선거법 때문이다.

이번 선거법이 문제가 많다는 건 모두들 안다. 지금 선거법은 누더기에 그치지 않고 구멍이 너무 커 바람이 횡횡 새니 다시 수선해야 한다. 향후 21대 국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늠하기 위해선 복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각 정당은 앞으로 선거제를 어떻게 바꿀지를 선거공약으로 지금부터 내놓아야 한다. 특히 미래통합당과 민주당이 그러하다.

전제: 선거법 개정은 아무리 좋은 방안이어도 결국은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한다. 다수당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선거제도는 아무리 명분을 내세워 개혁 작업을 기세 좋게 시작해도 결국 막판에 가면 다수당에 끌려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현황: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개혁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누더기 법안이라고 정치 개혁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비판했다. 그러나 끝까지 방해만 일삼던 당시 자유한국당이 설마 위장 정당을 만드는 무도한 짓까지 할 줄은 그들도 몰랐던 것 같다. 거기에 선거관리위원회마저 가세해서 ‘영구 없다!’를 외치는 바람에 일이 더 꼬였다. 드디어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시민단체들이 선거연합을 종용하고 나섰지만, 지난번 선거법 개정에서 민주당의 일방적 압박에 밀린 정의당은 입이 이만큼 나왔고, 궁지에 몰린 민주당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눈알만 굴리고 있다.

과정: 정치개혁특위가 의결한 원안은 지역구 225석, 비례 75석, 준연동형이었다. 12월27일 본회의를 통과한 ‘4+1 최종 수정안’은 민주당이 관철시킨 방안이다. 최종안에서 무엇이 변했는지 하나씩 따져보자.

첫째, 비례의석이 현행 47석으로 도로 원위치 되어 비례성 개선이 봉쇄되었다. 그러나 내 생각엔 이것을 갖고 민주당만 비난할 일은 아니다. 정치개혁특위 원안에 따르면 지역구를 거의 스무석이나 줄여야 했으니 지역구 의원이 많은 정당에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정개특위가 너무 의욕이 앞섰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음 국회에선 비례의석을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하면 더 생산적일 것이다.

둘째, 민주당은 그 47석의 비례의석 중에서도 연동형이 적용되는 의석을 처음엔 20석, 다음엔 30석으로 한정하여 그만큼 전체 연동률을 떨어뜨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각 정당이 얻은 정당투표의 득표율에 총의석과 비례의석을 연동해 배분하여 투표에 나타난 민심대로 국회가 구성되도록 하는 선거제도이다. 예를 들어 지역구에서 민주당 표가 40%인데 지역구 의석수에서 50%를 차지하면 비례대표는 하나도 없게 된다. 이걸 고려해 비례대표 의석수 중 일부에만 연동형을 적용하는 준연동형이 나왔다. 대형 정당이 비례에서 몇 석이라도 얻어가도록 만든 제도다. 궁색하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명분론만 앞세워 민주당만 비난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

셋째, 지역구도 완화 차원에서 민주당도 주장했던 석패율 제도 및 권역별 비례대표 제도를 없애버렸다. 민주당이 왜 이걸 갖고 말 바꾸기를 했는지 나 같은 외부자는 모른다. 만약 이게 유지됐으면 소위 ‘미래한국당’ 같은 위장 정당은 나오기 어려웠다.

이와 같이 정치개혁특위의 원안 대비 현 선거법에서 바뀐 세 가지를 돌이켜보면 다음 국회에서 또다시 선거법 개정에 나설 때 무엇은 포기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가 드러난다. 첫째, 또다시 비례의석을 늘리자고 하지 말자. 싸움만 나고 일이 안 된다. 둘째, 연동형 숫자를 갖고 싸우는 건 그만하자. 군소정당이 아무리 명분을 내세워도 민주당도 싫고 미래통합당도 싫어하면 될 리가 없다. 셋째, 대신 정당투표를 없애고, 지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 제도를 되살리자. 전국을 대여섯 지역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비례후보를 뽑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례 모두를 연동형으로 해도 된다. 위장 정당의 폐해도 상당히 막을 수 있다. 미래한국당은 영남 지역에선 어떨지 몰라도 수도권이나 호남지역에선 지역별 비례를 많이 얻을 수 없다. 여기에 위장 정당을 막기 위한 다른 방안을 덧대면 누더기라도 바람은 덜 샌다.

이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우선 민주당부터, 남 탓만 하지 말고,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앞으로 선거법을 어떻게 고칠지 선거공약으로 발표했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때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었던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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