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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판사 독립 위협에 ‘울타리’ 역할하는 독일법관연합

등록 2019-11-08 21:33수정 2019-11-13 02:45

[사법개혁, 길을 묻다 - ① 독일]

설립 110주년 독일법관연합 부의장 인터뷰
전국 판사 중 절반 가량이 가입
노동시간·처우 등 대변인 역할
“판사 독립 가치 일깨우는 게 임무”

2017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드러나면서 법원 개혁 도화선에 불이 지펴졌습니다. 그해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스스로를 “개혁의 상징”이라 칭하며 대법원장에 취임했지만, 기대와 달리 대법원은 현재 미온적인 ‘셀프 개혁’만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검찰 개혁은 국민적 관심사가 됐지만, 법원 개혁은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더 나은 법원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9~10월 독일·미국·프랑스·일본 등 네 나라를 현장 취재했습니다. 첫 사례는 다수 판사들이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해 권력을 나눈 독일 법원 이야기입니다. 미국·프랑스·일본에서도 사법개혁의 주요 ‘이정표’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지난달 11일 독일 베를린 독일법관연합 연방사무처에서 만난 요아힘 뤼플링호프 독일법관연합 부의장.
지난달 11일 독일 베를린 독일법관연합 연방사무처에서 만난 요아힘 뤼플링호프 독일법관연합 부의장.

2017년 인구 5만의 독일 헤센주 도시 베츨라시는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당(NPD)과 갈등을 빚었다. 지방선거 당시, 베츨라시가 시 소유 건물에서의 독일민족당 선거 유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는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독일 최고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는 베츨라시 시장에게 독일민족당이 선거 유세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내어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베츨라시 시장은 최고 법원 판단에도 불구하고 판결을 따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독일법관연합(법관연합·DRB)은 즉각 성명을 발표해 베츨라시를 비판했다. 법관연합은 성명서에서 “사법적 결정을 수용하는 태도가 독일의 법질서를 지탱한다. 베츨라시는 법치주의를 부정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일선 판사들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게 저희의 가장 큰 활동 목표예요. 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하고픈 대로 하면 법치가 무너지죠. 입법부와 행정부 조치에 관해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판사 독립의 가치를 일깨우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이이에요.” 지난달 11일 독일 베를린 독일법관연합 연방사무처에서 만난 요아힘 뤼플링호프 법관연합 부의장의 말이다.

법관연합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최대 규모의 법관 단체다. 1909년 만들어져 올해로 설립 110주년이 됐다. 전국 25개의 법관 단체가 모여있는데, 총 회원수 1만7천여명 중 1만2천여명이 판사다. 전국 2만5천여명의 판사 중 절반가량이 법관연합에 가입돼있는 셈이다. ‘법관의 물적·인적 독립의 완전한 보장’을 목표로 언론과 적극적으로 인터뷰하거나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 입법부·행정부와 교류하면서 새로 제정될 법에 대해 의견을 내기도 한다.

판사 독립을 위협하는 요인은 도처에 존재한다. 판결에 대한 근거 있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판결에 대한 불만은 때때로 판사 개인에 대한 도 넘은 공격, 판사 직군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로 이어진다. 2016년 독일 하멜른에서 전남편이 아내를 차에 매단 상태로 200여미터를 달려 아내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경찰노동조합 위원장은 ‘그동안 독일 법원이 범죄자들에게 지나치게 온정주의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판사에게 엉뚱하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법관연합의 옌스 그니자 의장은 각종 언론에 출연해 경찰노동조합 위원장이 여론에 편승해 근거 없이 판사들을 비판한다고 지적하면서 “판사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면 법과 양심에 의한 독립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근거 없는 공격과 비난으로부터 울타리 역할을 한 셈이다.

“만약 제가 판사 개인으로서 어떤 의견을 낸다면 저는 그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지 못하겠죠. 판사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공격을 감내한다면 덜 고통스러울 거예요. 조직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은 더 넓은 차원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판사의 독립성에서 나오는 권리가 아니라, 법관대표기구에서 나오는 권리입니다. 이 조직이 있기 때문에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지난달 11일 독일 베를린 독일법관연합 연방사무처에서 만난 요아힘 뤼플링호프 부의장이 협회지(Deutsche Richterzeitung·DRiZ)를 펼쳐 보이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독일 베를린 독일법관연합 연방사무처에서 만난 요아힘 뤼플링호프 부의장이 협회지(Deutsche Richterzeitung·DRiZ)를 펼쳐 보이며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법관연합은 더 나은 사법행정도 고민한다. 매월 50~60페이지 분량의 협회지(Deutsche Richterzeitung·DRiZ)를 펴내 법조계 이슈, 회원들의 찬반 기고문, 주요 판결 등을 공유한다. 지난 10월호는 ‘재정부족으로 판사 연수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에서 판사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평가하는 것이 금지됐다’는 법조계 주요 이슈를 다뤘다. 또한 다른 법관 단체들과 함께 정당처럼 법관대표기구(법관대표인사위원회·법관협의회)에 후보자를 추천하기도 한다. “사법행정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어요. 시민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쉬운 개념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판사 독립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요. 판사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어떤 ‘틀’이거든요.”

법관 독립, 자율적인 사법행정이란 가치는 계속해서 이야기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판사 독립’이라는 구호가 법전 속 선언에만 머물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가치가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치인이나 언론에서 어떻게 이야기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의견을 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법치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어요.”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베를린/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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