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리 축구 대표팀이 패배했다. 우승이 목표라더니 말레이시아에 졌다. 20일 결과가 가려질 테지만, 나쁠 경우 본선에 오르지도 못할 수 있다.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의 축구 팬들도 비슷한 심경이었겠지. 2014년 월드컵 우승팀으로 연패를 노리다 한국에 패해 조별 경기에서 탈락했다. 월드컵 참가 이래 처음이었단다. 성난 사람들이 이유와 원인을 찾아 나섰다. ‘그래, 이게 다 메수트 외질 때문이다!’ 아스널의 10번 외질 말이다. 월드컵 대회 이전부터 논란으로 가득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과한 친분으로 의심받던 외질은 자신을 겨냥한 모든 질문에 침묵하다 지난 7월 입장을 밝혔다. “나는 더 이상 독일 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다. 부당한 대우와 인종주의적 모욕에 지쳤다. 우리가 이기면 나는 독일인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우리가 졌을 때 나는 터키 이민자로 취급당했다.” 그의 말이 비장하지만 그리 독창적이지는 않다. 이민자 출신의 유럽 축구선수에게 부당한 취급은 일상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카림 벤제마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다. 그는 2014년에 한탄했다. “내가 골을 넣으면 나는 프랑스인, 못 넣으면 아랍인이다.” 물론 그와 비슷한 표현들은 이전부터 있었다. 예를 들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상대성 이론이 인정받았을 때 독일인은 나를 독일 사람으로, 프랑스인은 나를 세계 시민이라 불렀다. 내 이론이 오류로 판명된다면 프랑스인은 나를 독일인이라 할 것이다. 독일인은 유대인이라 하겠지.” 공교롭게도 프랑스와 독일이다.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는 촌극이 이번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에서도 있었다. 1998년 월드컵 우승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슈퍼스타 지네딘 지단을 받들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그의 재능과 출신. ‘알제리 이주민의 자식이 우리에게 영광을 선물했다. 우리의 이주민 정책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더 나아가 ‘흑인, 백인, 아랍인’(black, blanc, beur)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새로운 프랑스를 열었다고 호들갑을 부렸다. 2014년 월드컵을 우승한 독일도 찬가를 불렀다. ‘터키 이주민의 아들이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었다. 우리 통합 정책은 성공했다.’ 여기서도 다양한 출신들이 조화를 이룬 대표팀이 새로운 독일의 미래라고 야단들이었다. 사회적 위치(이주민 출신)는 물론이고 경기 스타일과 포지션(미드필더)마저 비슷한 지단과 외질은 어쨌든 성공한 사회통합의 상징이었다. 프랑스는 2002년 월드컵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조별 경기에서 탈락했다. 2018년 독일도 같은 성적을 거뒀다. 성난 원주민은 분노했고 불과 4년 전에 영광과 통합의 상징이었던 슈퍼스타의 출신을 문제 삼았다. 시차가 있지만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같은 야유를 새되게 퍼부었다. ‘그래, 너희들은 더러운 외국인일 뿐이야!’ 그들은 과거에 칭송했던 영웅들을 몰아세웠다. 왜 자녀 이름이 프랑스가 아니라 이탈리아식이야? 경기 전에 나오는 독일 국가를 부르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뭔데? 결국 축구라는 게, 스포츠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문제는 승패다. 패배하면 조그마한 골과 사소한 틈이 커져 분노와 증오를 뿜어낸다. 승리하면 골과 틈은 무시되거나 다양성으로 칭송받는다. 한국 대표팀의 출신 구성은 아직 ‘순수’하기에 유럽과 달리 인종으로 채색한 골과 틈이 없다. 그래선지 실수에 잔뜩 가혹하다. 정말 호되고 모질게 욕한다. 지난 경기에서 실수를 범한 젊은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축구 대표팀이 부디 우승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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