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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올드’ 말고 ‘보이’ 하라

등록 2018-09-05 18:27수정 2018-09-06 09:45

김종구
편집인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인 2004년 “60~70대는 투표 안 하셔도 괜찮다. 그분들은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20~30대 젊은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 중요성을 강조하다 나온 말실수였으나 후폭풍이 대단했다. 당시 정 대표의 나이 51살.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올해 65살이다. 그는 무대에서 퇴장하는 대신 다시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정 대표를 비롯해 이해찬(66) 더불어민주당 대표, 손학규(71) 바른미래당 대표 등 여야 각 정당의 신임 사령탑을 향해 ‘올드 보이들의 귀환’이라는 말이 쏟아진다. 요즘 60~70대는 젊은이 못지않게 팔팔한 나이인데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게 당사자들로서는 무척 속상할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65) 대통령, 이낙연(66) 국무총리 등 현 정부 최고 책임자들도 모두 이들과 엇비슷한 나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들에게 올드 보이 딱지를 붙이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여야 대표들은 올드 보이라는 말에 너무 속상해하거나 억울해하지 말기 바란다. 영어로 올드 보이는 졸업생 등의 뜻도 있지만 더 좋은 의미로도 쓰인다. 영어 속어와 관용어, 신조어 사전인 <어번 딕셔너리>를 찾아보면 올드 보이는 ‘지혜와 경험을 갖춘 남성에 대한 존경을 담은 표현’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에다 ‘주로 젊게 보이는 남성을 상대로 하는 말’이라는 추가 설명까지 붙어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올드 보이가 아니라 지(G)를 덧붙여 골드 보이(Gold boy)다”(손학규 대표) 따위의 안간힘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문제는 이들이 존경을 받을 만큼 ‘지혜와 경륜’을 보여주느냐다. 지혜와 경륜 대신 고집, 탐욕, 불통 등도 ‘올드’의 속성이다. 여야 신임 대표들의 행보가 후자에 머문다면 결국 올드 보이는 ‘정치 학교에서 이미 졸업했어야 할 사람들이 계속 학교에 남아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들’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여야 대표들은 올드 보이라는 호칭에 억울해하기에 앞서 우선 자신들의 ‘보이’ 시절부터 떠올렸으면 한다. 이들은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 투옥 등의 공통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이 젊은 시절 품었던 청운의 꿈은 ‘소아’가 아니라 ‘대의’였고 나라를 위한 진실한 열정이었던 게 분명하다. 정치권에 입문한 것도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소소한 정파적 이익이나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대의를 향한 열정에 불타던 ‘보이 시절의 초심’을 떠올릴 때다. “대통령이 야당한테 뭐 주는 게 있느냐”는 식의 투정은 너무 유치해 보인다.

각 대표들의 지혜와 경륜은 우선 당내에서부터 발휘돼야 할 것 같다. 바른미래당의 경우 손학규 대표가 “4·27 판문점 선언 비준에 우리 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고 말하자 바른정당 출신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남북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차이 등 이념과 노선의 대립을 수습할 지혜와 경륜이 어떻게 발휘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해찬 대표도 마찬가지다. 지금 정부의 정책은 과연 무오류인지, 당-청 관계는 올바르게 정립됐는지, 관료집단의 나태와 복지부동은 제대로 통제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 올바른 길로 이끄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20년 집권 플랜’이 당내 선거 과정에서야 좋은 구호였겠지만 정부 정책이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요즘 상황에서는 국민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여야 대표 자신들에게는 안 된 이야기지만 대권의 꿈은 접었으면 좋겠다. 정치인의 큰 꿈과 야망을 탓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야망은 지혜를 흐리고 욕심은 총명을 갉아먹는다.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5일 열린 여야 5당 대표 오찬에서 정동영 대표는 “이 자리에 모이신 지도자들은 어쩌면 내려갈 때를 준비해야 할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말이 진심이길 바란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 보이>는 비극이다. 이 제목은 고등학교 동창 사이인 ‘나이 든 소년들’의 비극을 지칭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각 정당의 수장이 된 ‘나이 든 소년들’의 행로는 어떻게 될까. 영화 <올드 보이>의 비극은 과거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제 막이 오른 정치극 ‘올드 보이’가 비극이 된다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욕심 때문일 것이다. 많은 유권자가 시청하기 시작한 정치 드라마 ‘올드 보이’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한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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