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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저 트럼프 말고 이 트럼프 / 황준범

등록 2018-09-20 18:16수정 2018-09-21 13:20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는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를 전해 듣고 “북-미 대화 즉각 준비”를 발표하기까지 오래 끌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동기자회견 뒤 1시간 만에 ‘자정 트위터’로 “매우 흥분된다”고 밝히고, 아침에는 “엄청난 진전”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공식 발표는 평양공동선언 공개 뒤 15시간 만에 나왔다.

“남북 합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여론이 달아오를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은 셈이다. 재빠르게 새 국면이 열렸지만, ‘신속하고 과감한 트럼프’와 ‘즉흥적이고 불안한 트럼프’ 사이에서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리스크는 여전히 놓여 있다.

마음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최근 밥 우드워드의 책과 <뉴욕 타임스>에 실린 ‘정부 고위 관리’의 익명 기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우드워드의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그려진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에 대한 태도는 아찔하다. 115만부 판매를 돌파한 이 책에 ‘코리아’(Korea) 또는 ‘코리안’(Korean)이라는 단어가 294차례나 등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차례, ‘김정은 위원장’은 13차례 언급됐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등장하는 장면이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 서한을 몰래 치우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빼고 싶어했고, 그 가족들에게 철수명령을 내릴 뻔했으며, 김정은 위원장 암살 훈련도 진행했다.

정부 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정지 방안까지 논의했었다는 내용의 <뉴욕 타임스> 익명 기고에는 1만5천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요즘도 워싱턴에서는 “이 글을 대체 누가 썼을까”가 주요 얘깃거리다.

최근의 상황들은 올해 초 미국에서 출간된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라는 책을 다시 들춰보게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정신과의사 27명이 공저한 이 책에서는 아예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즘, 경조증 등의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이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전례 없이 위험하고 비정상적으로 위험하다”고 진단한다. “충동적이고, 무분별하며, 자기애적이고, 경솔하며, 명백히 의도적인 거짓말과 위협과 허세는 미국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대통령 본인도 더욱 고립시킬 것”, “트럼프 대통령이 대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외로운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막대한 공포”라는 대목들은 우드워드 책의 예고편처럼 들린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반도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가족 철수명령 같은 위험천만한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어느 지점에선가 ‘저항군’의 조언이 먹혀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에 대해 취한 가장 극단적인 행동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다는 점이고, 그는 여전히 미국 내 가장 열성적인 대북 대화파로 버티고 있다.

이번에도 워싱턴에는 “북한이 진짜로 비핵화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실패할 경우 다시 6·12 북-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애정 공세’를 펴다가, 아니다 싶으면 한순간 돌아서서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틀렸다는 걸 입증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현실이 되려면 김 위원장은 ‘불안한 트럼프’가 아닌 ‘과감한 트럼프’를 꽉 붙들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보폭을 넓혀야 한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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