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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자소설 쓰는 어른들 / 은유

등록 2018-09-21 18:15수정 2018-09-22 15:17

은유
작가

얼굴 안 본 지 십년 넘은 지인한테 전화가 왔다. 첫 에세이집을 낸 다음해 일이다. 지인은 네가 책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어색한 축하 인사를 건네고는 용건을 꺼냈다. “조카가 고3인데 수시 원서에 넣을 자기소개서를 봐줄 수 있을까?” 특목고에 다니는 공부 잘하고 예쁜 아이이며 “자식과 다름없는 조카”라고 했다. 느닷없는 연락과 부탁에 이중으로 당황한 나는 횡설수설 거절 의사를 밝히고 통화를 종료했다.

지인은 몰랐지만 당시 내 아이도 고3이었다. 그때 난 손가락이 저릿하도록 집필 노동을 하느라, 또 복잡한 입시제도를 따라갈 여력 부족으로 소위 고3 엄마 노릇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 전화가 날 서럽게 했다. 다른 입시생은 이모까지 나서는 판국에 너무 무심했나 싶은 게 전쟁터에 아이 혼자 내버려둔 것 같아 미안했다. 한 아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온 집안의 티끌만한 자원이라도 동원되는 현실, 글은 얼마든지 기만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도 씁쓸함을 가중시켰다.

자소서의 세계는 알수록 놀라웠다. 글쓰기 수업에 온 취준생이 “이번엔 꼭 붙어야 한다”며 자소서 봐주길 간청했다. 한번 읽어보았다. 종교를 언급한 단락에서 글의 톤이 깨진다고 했더니 지원하는 곳이 기독교 기업이라 신앙생활을 부각했단다. 실은 교회를 안 간 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랬겠지만 말리고 싶었다. 거짓이 통하는 회사에 합격해도 위장하고 살아야 하니까 문제, 자신을 속이기까지 했는데 낙방해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자소설’이란 단어가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버젓이 등재됐다. 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로 실제로 없던 일을 꾸며 쓰는 자기소개서를 가리킨다. 과한 경쟁이 낳은 비릿한 단어다. 현장은 정말 소설처럼 전개되는 모양이다. 자소서 컨설팅 업체에 수백만원을 갖다 바쳤다는 취준생의 한탄도,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를 건설회사 대표로 포장했다는 후회 어린 고백도 들린다. 학교에 강연을 가면 교사들은 자기소개서 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꿀팁을 묻는다.

그럴 때면 나도 묻고 싶다. 자소서가 자소설이 된 공공연한 현실에서 거짓 자아의 전시장이 된 글이 얼마나 공정한 변별력을 갖는지. 기능인이 개입한 노회한 글이 당사자가 쓴 거친 글보다 낫다고들 보는지. 자소서를 도움받을 만한 자본이나 관계 자원이 없는 수험생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가 제일 궁금하다. 입시제도가 계급 격차를 벌리는 국가 장치가 된 건 알았지만 자소서마저 거기에 일조하는 현실은, 글의 인간인 내겐 유독 비극으로 다가온다.

자기소개서는 과거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의 서사를 만드는 뜻깊은 작업이다. 그것이 자소설이 된다는 건, ‘살아온 나’가 아니라 ‘평가받는 나’로 자기를 바라본다는 말이다. 강요된 가치로 자기 삶을 평가하고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면 나란 존재는 늘 부족하고 초라해 보인다. 제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자존감은 낮은 ‘불안한 어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금처럼 사회적 위계가 공고한 풍토에선 아이들 자소서에 어른이 나서고 어른들 자소서가 돈벌이가 되는 현실을 막을 수 없을 거다. 시몬 베유는 “밭을 가는 농민이 자기가 농민이 된 것은 교사가 될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회 체제는 깊이 병든 것이다”라고 <노동일기>에 썼다. 먼 꿈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농민도 교사도 정비공도 비슷한 임금을 받고 동등하게 사람 취급 받는 사회가 될 때라야 ‘자소설’이란 단어가 소멸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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