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지속되는 블랙리스트 문제 / 이명원

등록 2018-09-28 18:11수정 2018-09-29 16:30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 정부에서 가장 분주했던 행정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였다. 평창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남북 관계가 역사적 전환기를 맞게 되면서, 문체부의 정책 반경이 매우 넓어졌다. 종전선언 등을 통해 안보상의 긴장이 말끔히 해소된다면, 정부와 민간 양 차원에서의 문화·관광·체육 교류가 활성화되고, 문체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해도, 등잔 밑의 구조화된 어둠이 명백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그것은 전 정권의 위헌적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책임·실행자에 대한 법적 조처 문제이다. 결론을 앞당겨 말하자면, 지난 정권의 가장 큰 적폐 중의 하나인 블랙리스트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6월27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블랙리스트 책임 규명과 관련해 131명에 대한 수사의뢰 및 징계를 권고했다. 이에 대해 문체부는 9월13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 68명에 대한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문체부는 수사의뢰 권고 대상 26명 가운데 7명을 수사의뢰 하고 2명을 주의조처 했다. 징계 권고 대상자는 105명인데, 문체부는 단 10명만을 주의조처 하기로 했다. 주의조처란 국가공무원법상의 징계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징계조처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총 131명의 수사의뢰(26명), 징계 권고(105명) 대상자 가운데, 문체부가 진상조사위의 책임규명 권고에 대해 실제로 이행조처를 한 인원은 수사의뢰를 한 7명뿐이다.

이러한 문체부의 이행 상황에 문화예술계는 분노하고 있다. 연극인·무용인·미술인 등이 추석 연휴 기간에도 서울역과 남부터미널에서 1인 시위를 하였고, 진상조사위원회 민간조사위원들 역시 기자회견을 통해 “문체부는 이번 이행계획 발표를 전면 백지화하고, 공정한 사회적 검증 과정과 토론을 통해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이행계획’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우리는 구호에만 그치는 적폐청산, 예술인을 우롱하는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문체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백서를 발간하기 위한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서를 집필하는 민간조사위원들 역시 문체부의 이행계획을 접한 뒤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백서 집필을 마무리 중인 한 민간조사위원은 그 심정을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문체부가 사태 인식이 무딘 듯해 이를 인용해보고자 한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은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하여 문화부 내의 실질적인 징계는 한 명도 없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는 실의에 빠졌습니다. 장관께서 서릿발 같은 기세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블랙리스트 사태를 추궁하시고 문책하시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사실 나도 어리둥절한 것은 마찬가지다.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절규와 노력과 고통과 희망이 뒤엉킨 블랙리스트 사태의 결말이 책임 있는 자들의 자기면책이라는 이 사실이야말로, 블랙리스트 백서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헌법상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봉사는커녕 국민을 조직적으로 탄압했던 것이 블랙리스트 사태의 본질이다. 도종환 장관이 관료주의와 타협한다면, 문학인들 역시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문 정부 대북 정책 “평화 로비”라는 대통령실, 윤 정부는 그간 뭘 한 건가 1.

[사설] 문 정부 대북 정책 “평화 로비”라는 대통령실, 윤 정부는 그간 뭘 한 건가

[사설] 정부 비판 기자회견에 대관 취소한 언론재단 2.

[사설] 정부 비판 기자회견에 대관 취소한 언론재단

AI 판사가 시급합니다? [똑똑! 한국사회] 3.

AI 판사가 시급합니다? [똑똑! 한국사회]

[사설] 권력 눈치본 검사들 대놓고 발탁한 검찰 인사, ‘김건희’ 수사 말라는 신호인가 4.

[사설] 권력 눈치본 검사들 대놓고 발탁한 검찰 인사, ‘김건희’ 수사 말라는 신호인가

25년 경력단절을 넘어서 [6411의 목소리] 5.

25년 경력단절을 넘어서 [6411의 목소리]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