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기간 동안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 부부 다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사람은 단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평양 방문 전부터 화제와 논란의 대상이었고, 방문 기간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리룡남 북한 부총리)로 관심을 끌었다. 이 부회장의 평양 동행을 놓고 극우 세력에서는 “청와대가 억지로 목을 질질 끌고 갔다”는 원색적 표현까지 동원해 비판한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가 평양에 억지로 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정황상 이 부회장으로서는 남북 정상회담 동행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번 평양 방문을 통해 남쪽은 물론 북쪽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증명해 보였다. 북쪽 인사들이 그를 “부통령처럼 취급”(박지원 의원)했다는 전언도 들려온다. 이 부회장이 화제의 인물이 되면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 중인 사람을 평양 방문에 동행시킨 것이 적절한가’라는 논란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렸다. “남북 관계는 법의 영역이 아니다. 민족사적 현안이라는 점에서 현미경 잣대로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정동영 의원)는 적극적 옹호론도 나온다. 그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평양행을 바라보는 심정이 편치만은 않은 것은 민족사적 현안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동안 재벌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이유는 늘 같았다.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국익에 기여한 점을 참작했다.”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이런 논리를 앞세워 재벌 총수들의 형을 감경하고 사면복권을 해주는 역사를 되풀이해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초 인도 삼성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고, 그 뒤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만나 “3조원 직접 투자와 4만명 직접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국가경제발전 기여’의 이미지를 확실히 부각시킨 셈이다. 여기에 평양 동행으로 ‘남북평화 이바지’라는 날개까지 달았다. 사실 이 부회장의 평양 동행이나 인도에서의 대통령과의 만남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재판은 재판이고 일은 일”이라는 청와대의 말도 원칙적으로야 맞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런 상식과 원칙을 배반해왔다. 이 부회장이 대법원 판결에 앞서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목도 ‘유리한 여론 조성’일 것이다. 인도에서 대통령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이 안간힘을 썼듯이 평양행도 삼성 쪽이 더 적극적이었을 공산이 크다. 더 중요한 문제는 삼성이 과연 상식과 순리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는가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사건으로 기소된 뒤 주변에 “대한민국이 나한테 해준 것이 무엇이냐”라는 격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과 언론이 늘 삼성 편을 들어준 것은 까맣게 잊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이런 심기를 반영한 듯 사회문화단체 등에 대한 지원과 기부 등 사회공헌 활동을 대폭 줄였다. 최순실 게이트를 앞장서 보도한 한겨레신문사와 제이티비시에는 거의 광고를 끊은 상태다. 돈의 문제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1등 기업을 자처하는 재벌의 오만함과 왜곡된 사고방식의 문제다. 삼성은 10여년 전에도 한겨레의 ‘삼성 비자금 사건’ 보도를 문제 삼아 2년간 광고를 중단했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지나 ‘비자금 사건’은 ‘경영권 승계 로비 사건’으로 형태를 바꿔 나타났다. 언론과 시민사회의 온당한 비판을 백안시한 태도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삼성의 오만함은 전방위적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평양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검찰은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와해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 임직원 등 28명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삼성이 고개 숙여 반성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거액을 들여 좋은 변호사와 로펌을 고용해 법정싸움에서 승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부회장은 평양 방문에서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을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의 하나는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남북은 그동안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정상 관계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삼성은 언제까지 자신의 우월함에 취해 ‘비정상’을 정상처럼 느끼고 살아갈 것인가. ‘1등 삼성’이 아니라 ‘정상 삼성’을 생각해야 할 때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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