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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저출산에 대한 불편한 시각 / 조기원

등록 2018-10-04 17:56수정 2018-10-05 11:51

조기원
도쿄 특파원

일본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대부분의 사회문제의 배경에 저출산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개호(돌봄) 노동 현장에 투입할 로봇이 개발되고, 이민은 받지 않겠다면서도 외국인 인력 도입 확대안이 추진된다. 보험회사에서는 영업직원의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 모두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일본 정부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특정 문제에 대처하는 장관을 두는 제도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의 하나로 2005년부터 소자화(저출산)·남녀공동참가 담당상이 임명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는 저출산 문제만 담당하는 ‘소자화대책 담당상’을 두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서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을 느낄 수 있다. 공적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보통 중학교까지 아이들 의료비는 무료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가 큰 병에 걸렸다고 해도 병원비 때문에 모금 운동을 벌여야 할 일은 기본적으로 발생하기 어렵다.

한국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일본의 ‘맨션’들은 놀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지역마다 유아들의 실내 놀이터 구실을 하는 공공시설인 ‘아동관’이 있다. 아동관은 시설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름에는 물놀이, 가을에는 핼러윈 행진 등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본 소아과에 갔을 때 한국에 비해 병원 시설이 낡고 좁다고 느꼈지만, 부모의 질문에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더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을 보고 안심했던 기억도 난다.

다만, 일본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이 아주 좋은 나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도시지역 보육시설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보육원 입소를 기다리는 아동이라는 뜻인 ‘대기아동’ 문제가 중요 사회문제로 떠올라 있다. 엄마가 직장에 다녀도 입소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업주부가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기는 더 어렵다. 이런 경우 구청에 가서 상담해도 “운이 아주 좋아야 입소할 수 있다”는 허망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저출산 문제에 대처하는 한국과 일본의 태도가 많이 다르지만,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저출산 문제를 경제논리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인구가 줄면 국가경쟁력이 줄어드니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집권층이 많다.

지난 5월 가토 간지 자민당 의원은 “(결혼하는 여성은) 3명 이상 아이를 낳아서 키웠으면 좋겠다. 그게 세상과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라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양로원에 가게 되는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주간지 <신초45>의 ‘폐간에 가까운 휴간’ 사태를 불러온 스기타 미오 자민당 의원의 글에서도 비슷한 논리를 볼 수 있다. 그는 “엘지비티(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플을 위해 세금을 쓰는 것에 (사회적) 동의를 받을 수 있나. 그들은 아이를 만들 수도 없다. ‘생산성’이 없다”고 적었다. 출산이 곧 생산성이라는 논리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출산주도성장’이라는 말을 꺼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도 있다. 사람은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지 않은가.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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