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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칼럼] 교황도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갔나

등록 2018-10-22 18:25수정 2018-11-12 21:19

[김종구 칼럼]
지난 18일(현지시각)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 18일(현지시각)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우리 사회의 어떤 이들에게 ‘대북제재’는 성경 말씀과 동격의 신성불가침 진리다. 대북제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를 말미암지 않고는 복된 나라에 이르지 못하니라! 그러니 누군가 대북제재 완화를 조금이라도 입에 올리면 신성 모독이라며 길길이 날뛰고 분노한다. 그런 사람은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간 용서받지 못할 배교자다.

이런 비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길에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역설하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은 “김정은을 대신해 총대를 멨다” “북한의 대변인” 따위로 벌떼처럼 공격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대통령이 “실질적 비핵화가 될 때까지는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자신들을 구출하러 달려온 유럽 십자군이나 만난 듯 의기양양하다.

그런데 모든 광신종교가 그렇듯이 ‘대북제재 신앙’의 교리는 허점투성이다. 우선 대북제재 강화를 열심히 기도하면 천국(북한 비핵화)이 도래하는가? 지난해 9월 미국의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유엔 대북제재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란 기사에서 이를 네가지로 간명하게 정리했다. 첫째, 북한은 수십년간 제재 속에서 살면서 국제사회의 감시 레이다를 피할 수 있는 비밀 경제를 갖추었다. 둘째, 몰래 들여오는 물품 통로가 차단되면 곧바로 다른 어떤 곳에서 얻는다. 셋째, 북한은 이미 물자 부족에 단련돼 있다. 넷째, 제재가 강화될수록 북한은 핵 개발에 사활을 건다.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이나 전문가들의 판단을 종합할 때, 대북제재 고삐를 조이면 북한이 저절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교리는 그 자체로 혹세무민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조처를 시작했는데도 미국은 막무가내로 제재를 풀지 않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대북제재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생각이겠지만 ‘비핵화가 완료된 뒤 제재를 완화한다’는 게 과연 사리에 맞는지 의문이다. 상호 신뢰 구축이 비핵화를 앞당기는 데 더 효과적이지는 않은지, 만약 북한이 완벽한 비핵화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더 강력한 제재 조처를 취하면 그만 아닌지,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보수세력에게 그 정도의 고민과 성찰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북제재 문제를 전략적 관점에서라도 바라보면 괜찮은데 절대 털끝 하나 건드려서 안 될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숭상하고 있다.

더 역설적인 것은 대북제재교 신자들이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단언하고 있는 점이다. 핵이 북한에는 보물단지인데 그 보물단지를 포기하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들은 애초부터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천국의 도래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게 본심일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대북제재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신도들을 끌어모아 교세를 불리고 헌금함을 두둑하게 채우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진짜 목적이다.

원래 유사 종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온상으로 삼아 번창한다. 해방 이후 줄곧 ‘안보 불안 심리’에 편승해 이 땅에서 승승장구해온 유사 종교 세력은 한반도에 평화 물결이 일면서 ‘영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온 ‘한미 동맹 약화 교리’도 요즘에는 효능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찾은 활로가 바로 대북제재다. 마침 대북제재 완화를 둘러싼 한미 간의 미묘한 의견 차이까지 감지되니 사막의 오아시스요 깜깜 망망대해에서 발견한 등댓불이 아닐 수 없다.

대북제재교 신자들의 눈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계획도 못마땅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평양 방문을 요청한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김정은의 이미지만 좋게 만들 뿐”이라고 격렬히 반발했다. 국제사회에 대한 교황의 영향력이나 평화 사도의 구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 경험 등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은 지금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평양 방문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교황에 대해 부글부글 끓는 심정일 것이다. 교황의 방북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가능성도 있다”고 미리 딴죽을 걸고 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교황이 남미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그들에게는 새삼 의구심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개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황마저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갔다!” 이 광신도들을 어찌할 것인가.

김종구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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