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나는 사탕을 먹고 싶지 않아요.” 비가 그치며 성큼 서늘해진 23일 오후, 청와대가 가까운 효자치안센터 앞 ‘서울시 발달장애인 차별증언 및 권리옹호 활동선포식’ 무대에 24살 청년 병욱씨가 손팻말을 들고 올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과자나 사탕을 쥐여주고 아이 같은 감사인사를 시키는 게 싫다고 했다. 그의 말은 활동지원인이 전해주지 않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렇다고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로 여겨지는 게 정당한가요, 그가 묻는 것 같았다. 최근 잇단 특수학교 폭행사건이 드러냈듯, 최소한의 보호도 이뤄지지 않는 ‘야만적’ 현실이 여전한 상황에서 장애인의 자립과 존엄은 ‘한가한 소리’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통제와 교정의 명목 아래 나오는 폭력이 과연 몇몇 ‘나쁜’ 교사나 사회복무요원만의 문제일까. 차별은 그들을 ‘보통사람과 다른 존재’로 분리한 데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이제 분노만이 아니라 다른 질문을 던져볼 때다. 장혜영 감독은 1년4개월 전, 18년간 시설에서 살던 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씨를 데리고 나왔다. 동생과의 삶을 유튜브 채널로 전하고, 영화 <어른이 되면>과 책에 담고, 강연을 하고,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발표 땐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재주 많고 매력 많은 이 자매의 삶은 언뜻 보기에 행복하다. 혜정씨가 언니의 가장 아끼는 옷을 몰래 입는가 하면 서로 다투는 일도 적잖은 것 역시, 세상 흔한 자매 모습이다. 수많은 주변 지인이 혜정씨와 친구가 되고 활동지원인 교육까지 이수하며 혜영씨 없는 시간을 함께한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틈틈이 혜영씨는 발달장애 이슈로 ‘가장 자주 마이크를 잡는’ 인물이 됐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쉬울 순 없다. “난 아프면 끝장이다. 가정 없는 장애인도 이리 살아야 하지 않나, 살 수 있지 않나 보여주기 위해 가진 모든 걸 쏟아붓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 23일 발달장애인들 스스로가 만든 단체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청와대 앞 집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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