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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경제수장 교체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등록 2018-11-06 18:07수정 2018-11-07 09:37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지금의 경제지표 하락과 정책 조정 난맥을 단순히 팀워크 문제로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면서 그것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공공부문 고용을 늘려 직접 해결하겠다는 무모한 정책에 동조한 사람이 정부 내 장하성씨와 김동연씨뿐인가?

요즘 정부 경제정책 운영을 보고 있으면 혼란스럽다. 현 정부 지지자들 사이에서조차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느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경제지표가 모두 하락세인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데 정부는 별문제가 아니란다. 정책 기조와 주요 전략이 따로 놀고, 전략과 전술이 따로 논다. 이젠 한술 더 떠서 정책은 그대로 갈 건데 사람을 바꾸겠단다.

지난 10월30일 아침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부총리를 동시에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칼럼과 청와대에서 그렇게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보도 기사가 각기 다른 신문에 실렸다. 독자적인 기사라기보다는 무언가 공통의 뒷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후 청와대에선 적극 부인을 하지 않았고, 지금은 모두들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틀 뒤 11월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당부하기 위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서 국회에 갔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경제를 그런대로 잘 운영하고 있으며 기존의 3대 경제정책 틀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뭔가 이상하다. 그 예산은 누가 만들었나? 양대 경제정책 수장인 장하성씨와 김동연씨가 만든 작품이다. 경제정책 틀을 유지하고 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을 준비한 핵심 인사를 예산 심의 직전에 경질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경제정책은 결국 예산안을 통해 구현된다. 세금을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거둘 것인가를 밝히는 것이 조세정책이고, 그렇게 거둔 돈을 어디에 누구에게 얼마나 더 쓰고 얼마나 덜 쓸지를 정하는 것이 지출 정책이다. 그래서 입헌민주주의의 탄생지라고 하는 영국에선 매해 예산안을 재무부 장관이 발표하고 재무부 장관이 의회에 나가서 통과를 요청한다. 경제정책이 결국 예산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경제정책과 예산안도 대통령 책임이고, 따라서 예산안도 궁극적으론 대통령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에 관해선 본인이 직접 나서서 언급하기를 꺼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지 않아도 국민이 선출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지 장하성씨나 김동연씨가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서 그 경제정책의 틀을 만들고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그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정부 방안을 만들어온 수장들을 동시에 교체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내년 예산안 심사를 코앞에 둔 지금 시점에 경제수장을 교체한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정부 1년 살림을 심사해달라고 보내놓고 이 시점에 경제수장을 교체하면 국회는 누구와 논의하냐고 항의하는 예산결산특위 위원장의 지적은 그래서 적절하다.

혹자는 양인 동시 교체를 단순히 팀워크의 문제로 돌릴지 모르겠다. 두 사람 간의 불화설은 진즉부터 나왔다. 개혁적 경제학자인 장하성씨와 관료 출신인 김동연씨는 올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한 후부터 서로 상반된 발언을 해왔다. 하지만 정부정책의 기조와 다른 발언을 해온 사람은 김동연씨다. 그는 끊임없이 정부정책 기조에 배치되는 해석이 가능한 발언을 흘리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막상 자신의 의지가 담긴 뚜렷한 정책을 내놓은 적도 없다.

그가 지난봄에 특단의 대책이라면서 내놓은 청년실업 대책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이 있기나 하나? 작년 말 예산안이 통과된 후 몇달 만에 겨우 4조원짜리 추경을 갖고 왔던 그는 결국 예상보다 20조원 넘게 세금을 더 거두면서 경기하락 국면에 긴축재정을 펼친 꼴이 되었다.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아이처럼 뻔하고 안이한 대책을 엮어서 내놓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몇달 전부터는 마치 자기를 그만 놓아달라는 뉘앙스의 말을 아예 대놓고 하고 다녔다. 앞으로 있을 경제정책 실패의 결과가 자기 탓이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다. 그런 그를 지금까지 유임시킨 것 자체가 이상했다.

지금의 경제지표 하락과 정책 조정 난맥을 단순히 팀워크 문제로 돌리는 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면서 그것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공공부문 고용을 늘려 직접 해결하겠다는 무모한 정책에 동조한 사람이 정부 내 장하성씨와 김동연씨뿐인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제로섬에 가까운 최저임금 인상에만 맡겨놓고 도끼 썩는 줄은 모르고 세월을 보낸 책임은 과연 그들 둘뿐인가? 부동산 정책에서 이리저리 눈치만 보다가 실기하고 나서 이젠 무리하기 짝이 없는 2주택자 대출 전면 금지를 들고나온 것은 누구 탓인가?

사람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바꿀 것이면 왜 바꾸는지, 왜 그들만 바꾸어야 하는지, 왜 꼭 지금 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그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국민이 그래도 가장 신뢰하는 국가사회기관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설명을 하면 그것마저 잃는다. 신뢰를 잃고 나면? 모두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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