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1950년 10월8일 날짜로 된 마오쩌둥의 친필 문서가 있다. 펑더화이, 가오강, 훙쉐즈 등 군 지도자들에게 보낸 이 문서는 한국전쟁 파병 명령서다. 초안 형태의 이 문서에는 곳곳에 수정한 흔적이 있다. 특히 파병한 군대의 명칭이었던 ‘인민지원군’의 표기가 눈에 띈다. 마오는 ‘支援軍’이라고 썼다가 ‘志願軍’으로 고쳤다. 돕는다는 뜻의 ‘支援’과 자원한다는 뜻의 ‘志願’은 성조가 다르긴 하지만 중국어로도 한국어로도 음이 같다. 여섯차례 등장하는 ‘지원군’ 표현에서 4곳이 수정된 걸 보면 단순한 실수로 보이진 않는다. 이 문서는 2011년 6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건 90돌 자료전에 전시됐다. 전시회 소식을 전한 중국 신문은 명칭 변경의 뒷이야기를 보도했다. 마오와 당은 애초 중국이라는 국가 차원에서 북한을 돕는다는 뜻으로 파병 부대 이름을 정하려 했으나, 건국에 참여한 민주당파(공산당 외) 인사 황옌페이의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수용해 바꿨다는 내용이다. 황옌페이는 정규군으로 북한을 지원하면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될 수 있으니 ‘비정부 성격’을 갖추자고 권했다고 한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志願’이라는 동음이의어를 찾아낸 것은 묘책이었을 수 있다. 애초부터 자발적 성격이었고 명칭이 바뀐 적 없다는 학설도 있지만, 중국엔 ‘황옌페이 권고설’이 널리 퍼져 있다. 어쨌든 최고지도자 마오가 펑더화이를 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동북변방군을 인민지원군으로 바꿔 신속히 출동시킨다”며 정규군 편제 변경을 명령했는데도, 중국은 ‘국가의 파병’이 아닌 ‘인민의 자발적·개인적 참전’이었다고 주장한 셈이다.
1950년 10월8일 날짜로 된 마오쩌둥의 이 친필 문서는 한국전 참전을 명령하는 내용으로, 인민지원군의 표기가 도움을 제공한다는 뜻의 ‘支援軍'에서 자발적 참여라는 뜻의 ‘志願軍'으로 고쳐진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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