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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김동연 부총리의 ‘걸리버 여행기’

등록 2018-11-12 18:24수정 2018-11-13 09:07

김종구
편집인

지난 8월에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며칠 간격으로 잇달아 만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른바 ‘김 앤 장 갈등’이 최정점으로 치달을 때였다. 두 사람 모두 갈등설에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언뜻언뜻 내비치는 불편한 속내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역시 소문대로 두 사람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사이로 보였다. ‘도리 없이 경제 투톱을 바꾸는 수밖에 없겠구나.’ 두 사람과 만난 뒤 내린 결론이었다.

김 부총리에게는 약간 묘한 구석이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는 당면한 경제 현안보다는 오히려 화제의 상당 부분을 소설 등의 인문학적 이야기에 할애했다. 그는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주인공 장발장이 마들렌 시장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자신으로 오해받아 재판을 받게 된 상황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과 고뇌가 소설 원문에는 얼마나 길게 묘사돼 있는지 등을 열띠게 설명했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자신이 쓴 책과 함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선물로 주었다. 김 부총리에게 물었다. “부총리께서는 지금 본인이 소인국의 난쟁이들한테 둘러싸인 처지라고 여기시는 건가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책 선물을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니…. 언론인들은 참 상상력이 대단하십니다.”

그가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을 소인국 ‘릴리퍼트’의 난쟁이 정도로 과소평가하는지, 아니면 거인국 ‘브로브딩내그’의 힘세고 우악스러운 거인들로 여기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걸리버 여행기>가 당시 영국 상황에 대한 신랄한 풍자였듯이 그의 마음속에도 현 정권에 대한 비꼼과 냉소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경제 관료 특유의 가지런한 논리 정리는 돋보였으나,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열정과 신념, 패기는 잘 전해져오지 않았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라는 현 정부의 전체적인 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 시절 자신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만든 ‘비전 2030’에 이미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태도가 현 정권 핵심 인사들과의 불화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거꾸로 불화의 시발점인지를 알기는 어렵지만 결론은 그랬다.

대부분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정권의 핵심 세력은 끊임없이 관료들의 충성심을 의심한다. 반면에 관료 그룹은 정권 핵심 인사들의 실력이 변변치 않다고 여긴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장하성-김동연 조합처럼 최악으로 나타난 경우도 드물다. 김 부총리에 대한 비난과 험담도 정권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문재인 정부와 기본적으로 방향이 맞지 않는 사람이다” “이벤트에 능하고 언론 플레이만 잘할 뿐 실제로는 알맹이도 없다” 등등. 그날 만남에서 이런 비판을 입에 올리기는 거북해서 관련된 질문 한 가지만 던졌다. “부총리의 대통령 보고에 앞서 청와대 참모진이 사전에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데도 부총리께서는 달랑 종이 한장짜리만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던데요.” 그는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만남에서 그런 문건이 중요합니까. 그보다는 더욱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아야지요”라고 말했다. 그런 해명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를 둘러싼 잡음 중 상당 부분은 과장되고 사실과 다른 대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 결정권자들 내부의 불협화음을 그동안 선제적으로 부각시킨 게 김 부총리 쪽이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것이 그한테는 ‘최소한의 저항’일 수도 있고 ‘알리바이 남기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는 심리’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냉소적 심리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선 것은 유감스러운 대목이다.

정부 정책이 원활히 굴러가기 위한 조건으로 학계에서는 다음의 세 요소를 꼽기도 한다. 첫째, 대통령의 확고한 철학과 신념, 둘째, 해당 부처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 대통령의 정책 의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매개 인사’의 존재, 셋째, 능력과 충성심을 갖춘 관료들을 활용할 수 있는 폭넓은 인재 풀. 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 정책을 둘러싼 끝없는 혼선과 불협화음은 이 세 요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새 경제팀의 출범과 함께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충족될 수 있는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김 부총리가 앞으로 어떤 행로를 밟을지를 놓고 벌써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자유한국당이 그를 영입하려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의 정치적 선택은 자유지만 김 부총리 자신도 이것 하나만큼은 잘 알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요즘 행태를 보면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여러 괴상한 나라들보다 더 이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말이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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