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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2년 만에 ‘촛불’ 흔들어대기 시작한 그들

등록 2018-11-28 17:44수정 2018-11-29 11:34

‘촛불’과 ‘적폐청산’의 서슬에 엎드려 있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소득주도성장 포기하라며 ‘사회주의’ 딱지까지 붙이려 한다. 사법농단 단죄를 방해하더니 사법행정 개혁도 퇴행 조짐이다. 남북 군사합의엔 ‘서울 방어벽이 허물어진다’며 국민을 겁박한다. 촛불이 위태롭다.
김이택
논설위원

한때 80%를 웃돌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이젠 50%를 약간 넘는다. ‘적폐 청산’이 끝물에 들어서고 ‘북핵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이 경제, 특히 동네북 신세가 된 ‘소득주도성장’이 발목을 잡았다. 빌미가 된 최저임금이 16%나 오를지는 청와대도 몰랐다니 사전 준비가 충분했을 리 없다. 내수 위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긴축예산을 짜놓은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김동연-장하성 갈등’까지 겹쳤으니 경제가 잘 돌아갈 리 없었다. 변명의 여지 없는 실책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이외 달리 돌파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수출·대기업 중심의 낙수효과에 의존한 성장은 한계에 부닥쳤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임금주도성장이나 포용성장을 제안하고, 아베나 시진핑도 임금인상과 내수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은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면서도 그 파장을 가늠하지 못한 게 더 결정적이다. 민주정부 10년의 경제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수구보수 언론·야당으로부터 ‘세금폭탄’ ‘경제파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란 원색적인 공격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 역시 ‘대구·부산엔 추석이 없다’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경제위기 공세에 시달렸다. ‘문재인표 경제’의 세 기둥 가운데 공정경제란 약탈적 하도급 구조 속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유용으로 이익을 독점해온 대기업들의 부당거래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 사람들은 대기업 중심의 기존 경제사회구조가 수십년 이어지면서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기득권 집단을 너무 얕봤다. 이번에도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빈틈을 노려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국민을 실험대상 삼았다”더니 급기야 ‘사회주의 경제’ 딱지까지 붙이려 한다. 대통령이 재판도 끝나지 않은 재벌 총수를 독대하고, 경제부총리는 혁신성장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더니 결국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대신 포용성장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이들과의 담론경쟁에서 밀린 결과로 보여 씁쓸하다.

문재인 정부 2년차를 지나면서 그동안 ‘촛불’과 ‘적폐청산’의 서슬에 엎드려 있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법농단 사태는 박근혜 정권이 쌓은 적폐의 사법부 버전이다.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거래에서 씨앗이 뿌려졌다. 성역 없이 단죄하고 제도를 확 바꿔야 그나마 국민 신뢰를 회복할 단초가 열린다. 그런데 고위법관들을 비롯한 법원 안팎 기득권 세력은 본말을 뒤집어 “왜 검찰 수사를 불러들였냐”며 현 대법원장을 흔들어댔다. 명백한 재판개입과 법관사찰 행위가 드러나 ‘탄핵 검토’가 필요하다고 자성의 뜻을 담아 결의한 전국법관대표회의에 격려는커녕 ‘파벌’로 매도하고 ‘해산하라’고 막말까지 해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좌고우면하는 사이 사법발전위가 어렵게 만들어낸 사법행정 개혁안마저 후퇴할 조짐이 엿보인다. 태극기부대에 ‘박근혜 형사처벌’을 문제삼으라는 훈수까지 나오는 걸 보면 이러다 적폐청산 법정에까지 화염병이 날아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들은 북핵 협상에도 대놓고 딴지를 걸고 있다.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합의 직후부터 ‘대한민국 농락 리얼리티 쇼’라며 ‘1990년대 미국이 폭격을 생각할 때 우리 국민이 결기있게 나섰다면 북핵을 끝낼 수 있었다’는 등 국민 생각과는 동떨어진 주장을 폈다. 한-미 합동훈련을 중단하자 ‘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성급한 걱정을 늘어놓았다. 종전선언에 버금가는 남북의 군사합의가 나온 뒤엔 ‘서울 방어벽이 허물어진다’며 국민을 겁박했다. 최근엔 새로운 것 없는 옛날 위성사진을 걸어놓고 ‘북한의 거대한 속임수’로 과장하는 미국 언론을 그대로 인용해놓고도 바로잡기는커녕, 해명에 나선 청와대를 ‘북한 대변인’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북핵 해결 기미도 없던 박근혜 정권 초기, 현실과 동떨어진 통일대박론을 퍼뜨리며 장밋빛 청사진을 펼치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북한에 대한 불신 수준을 넘어 정략이 꿈틀거린다.

지난해 ‘박근혜 탄핵’ 직후 발표된 촛불권리선언은 ‘탄핵이 끝이 아니며, 민주주의가 다시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삶의 현장과 일터를 바꿀 것’이라고 다짐했다. 촛불로 탄생했다는 문재인 정부가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되풀이되는 노-정 갈등은 참여정부 초기를 연상시키는 데자뷔다. 거대한 기득권 동맹의 벽 앞에서 4·19, 80년 서울의 봄, 87년 6월항쟁 이후의 역전패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책임감과 경각심을 가져야 할 데가 청와대임은 물론이다.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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