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적폐청산’의 서슬에 엎드려 있던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소득주도성장 포기하라며 ‘사회주의’ 딱지까지 붙이려 한다. 사법농단 단죄를 방해하더니 사법행정 개혁도 퇴행 조짐이다. 남북 군사합의엔 ‘서울 방어벽이 허물어진다’며 국민을 겁박한다. 촛불이 위태롭다.
논설위원 한때 80%를 웃돌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이젠 50%를 약간 넘는다. ‘적폐 청산’이 끝물에 들어서고 ‘북핵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이 경제, 특히 동네북 신세가 된 ‘소득주도성장’이 발목을 잡았다. 빌미가 된 최저임금이 16%나 오를지는 청와대도 몰랐다니 사전 준비가 충분했을 리 없다. 내수 위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난해 긴축예산을 짜놓은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김동연-장하성 갈등’까지 겹쳤으니 경제가 잘 돌아갈 리 없었다. 변명의 여지 없는 실책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이외 달리 돌파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수출·대기업 중심의 낙수효과에 의존한 성장은 한계에 부닥쳤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임금주도성장이나 포용성장을 제안하고, 아베나 시진핑도 임금인상과 내수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은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면서도 그 파장을 가늠하지 못한 게 더 결정적이다. 민주정부 10년의 경제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수구보수 언론·야당으로부터 ‘세금폭탄’ ‘경제파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란 원색적인 공격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 역시 ‘대구·부산엔 추석이 없다’며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경제위기 공세에 시달렸다. ‘문재인표 경제’의 세 기둥 가운데 공정경제란 약탈적 하도급 구조 속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유용으로 이익을 독점해온 대기업들의 부당거래를 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 사람들은 대기업 중심의 기존 경제사회구조가 수십년 이어지면서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기득권 집단을 너무 얕봤다. 이번에도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빈틈을 노려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국민을 실험대상 삼았다”더니 급기야 ‘사회주의 경제’ 딱지까지 붙이려 한다. 대통령이 재판도 끝나지 않은 재벌 총수를 독대하고, 경제부총리는 혁신성장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더니 결국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대신 포용성장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이들과의 담론경쟁에서 밀린 결과로 보여 씁쓸하다.
연재김이택 칼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