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춘
논설위원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위에서 버티고 있는 홍기탁과 박준호의 시간을. 그곳에서도 시간은 흐를까, 흐르면 어떻게 흐를까를. 왜 하필 시간인가. 무엇보다 지금 그들은 시간으로 환산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굴뚝 아래 농성 천막을 찾았을 때, ‘379일’라고 쓴 입구의 손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득한 굴뚝 높이만큼이나 비현실적이던 그 숫자는, 이 글이 발행되는 날 ‘412일’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형식으로 보면, 굴뚝 위의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적립’이다. 군대나 교도소에서 가위표를 쳐가는 것과 정반대로, 만기도 없이 쌓이기만 한다.
그곳 시간도 어떻게든 흐르긴 할 것이다. 두 벗의 ‘굴뚝바라지’를 하는 차광호에게 물었다. “굴뚝 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정확히 한 달 뒤인 성탄절에 자신의 세계기록(408일)이 깨지는 걸 지켜보게 될 베테랑이 답했다. “일과표를 짜서 그대로 하지 않으면 곧바로 흐트러지고 만다.” 굴뚝 위의 시간은 애써 흐름을 발명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굴뚝 농성 409일을 맞은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왼쪽)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25일 오후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굴뚝 농성장에서 시민들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든 채 손을 흔들고 있다. 강창광 기자 shang@hani.co.kr
그는 매일 팔 굽혀 펴기와 제자리 뛰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정확히 소화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가 매진했다는 반복운동에서 우리에 갇힌 짐승의 정형행동이 연상됐다. 신실한 수행의 시간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굴뚝 꼭대기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이의 시간이 짐승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 수 있겠는가.
2015년 새해 첫날,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굴뚝 농성장 앞에서의 대화가 떠올랐다. 굴뚝 위로 전화를 걸어, 훗날 차광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세상과 연결돼 있을 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땐 눈치채지 못했다. 굴뚝 위의 시간은 ‘연결돼 흐르는 시간’과 ‘단절돼 멈춘 시간’으로 나뉜다는 것을.
홍기탁과 박준호가 적립한 9888시간(412일)에서 ‘연결’과 ‘단절’의 시간은 각각 얼마나 될까. 이 물음은 굴뚝 아래의 내가 그들과 얼마나 정서적으로 시간을 공유했는지를 스스로 묻는 것이기도 하다. 고백건대, 농성장 한번 찾아가는 것 말고는 무감각, 무관심, 무기력의 시간을 보냈다. 그 긴 시간, 나는 기시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김진숙이 크레인 농성을 하고 있던 2011년 7월, 금속노조가 고공농성 경험자들을 조사한 적이 있다. 35개 사업장에 200여명이나 됐지만, 머잖아 소박한 수치가 되고 말았다. 김진숙은 309일 만에 내려왔으나, 또 다른 ‘김진숙들’의 고공농성이 줄줄이 이어졌다. 고공농성은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현상의 일부가 돼갔다. ‘촛불혁명’ 이후는 다를 거라던 기대도 빗나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촛불집회 첫날 광화문광장에 들어서기 직전에도 미열처럼 무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이 자신감으로 바뀐 건 광장에 모인 이들과 연결감을 느낀 순간부터였다.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시간들이 연결되자 순식간에 혁명의 시간이 도래했다. 새로운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요지부동의 자연현상 같던 권력자가 끌려 내려왔다.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신기록은 잔인하다. 하지만 나를 굴뚝 아래로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문제는 시간이다. 홍기탁과 박준호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409일째 되던 날 굴뚝 위를 다녀온 의료진은 두 사람이 ‘뼈밖에 남지 않았더라’고 전했다. 올해 안에 그들이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2019년은 소멸의 시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당장 오는 주말 약속 장소부터 목동으로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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