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김원기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신년인사회에서 “정치의 중심은 당과 국회”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새해를 맞아 정치의 복원을 기대한다. 출발은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 활성화였으면 좋겠다.
정치팀 선임기자 반정치주의 프레임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열심히 하는데 국회의원들은 여야로 편을 갈라 싸움만 한다”는 주장이다. 박정희 독재 시절 만들어진 이 엉터리 프레임의 효능을 기득권 세력이 재발견해 확산시킨 것은 대략 1990년대부터였다. 프레임의 핵심은 대통령에게 ‘제왕적 대통령’의 왕관을 씌워 국회와 분리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면 무한책임을 져야 하므로 ‘정치’가 아니라 ‘통치’를 하라고 유혹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이 대부분 유혹에 넘어갔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대통령 정치’는 외면했다.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은 3당 합당, 김대중 대통령은 연립정부로 ‘제왕적 대통령’ 신화를 이어갔다. 실패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대로 갔다. 당정을 분리했다. 정치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역시 잘못된 처방이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민주당 정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통령 당선 직후 5부 요인을 만났을 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등은 삼권분립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생겼다”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통치’가 아니라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경쟁자였던 홍준표·안철수 후보의 대표 복귀와 6·13 지방선거로 야당과의 대화는 상당 기간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5당 원내대표들과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를 출범시키고 합의문을 발표한 것은 1년 반 뒤인 2018년 11월5일이었다. 1주일 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부총리 인사에 반발하면서 국회 실무 논의 기구는 구성되지 않았다. 2019년도 예산안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손잡고 처리하자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여·야·정 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이후 여·야·정 협의체는 표류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문 가운데 많은 부분이 연말 정기국회와 이어진 임시국회에서 예산과 법안에 이미 반영됐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저소득층 지원, 취업 비리 근절 및 채용 공정성 제고, 규제 혁신 및 신산업 육성, 불법촬영 유포 처벌 강화, 강서 피시방 대책, 음주운전 처벌 강화, 저출산 법안과 예산 초당적 처리 등 상당 부분이 관철됐다.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직접 만나 정책 과제를 놓고 대화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이다. ‘대통령 정치’가 제자리를 잡아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만든 여·야·정 협의체가 표류하도록 버려둘 일이 아니다. 여·야·정 협의체가 성사된 데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전향적 자세도 한몫했다. 김성태 의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를 ‘혼수성태’라고 부르지만, 그의 이념 성향은 ‘리버럴 보수’에 가깝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4선 경륜의 정치인이다.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적극 검토’에 합의해 단식 정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경원 원내대표의 유연한 태도와 정치적 결단 덕분이다. 그런 나경원 원내대표가 정초부터 청와대 특별감찰반 민간인 사찰 의혹, 신재민 전 사무관 폭로 의혹 등에 대해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나 특검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하지만 야당이 구체적인 요구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 중요하다. 대화와 협상과 타협, 즉 정치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여·야·정 협의체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국회에 여·야·정 협의체 1차 합의문 실천을 위한 실무 기구를 즉시 구성해야 한다. 문 대통령도 협의체에 여전히 큰 기대와 관심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다. 무엇보다 제1야당 원내대표는 협의체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구성원이 바뀌었으니 대통령과 원내대표들이 한번 만나는 자리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방안과 국가정보원 개혁 방안 등을 의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검찰 개혁은 더 미룰 수 없는 국정 과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을 신뢰할 수 없다는 야당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었던 김원기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신년인사회에서 “정치의 중심은 당과 국회”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새해를 맞아 정치의 복원을 기대한다. 출발은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 활성화였으면 좋겠다. shy99@hani.co.kr
연재성한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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