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논설위원
국회의원들은 국가, 국민, 민생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국민에겐 그저 ‘밉상’이다. 혐오의 대상이다. 억울해한다. 정치부 기자로 겪어본 그들은 누구보다 치열하다. 공익에 신경 쓰랴, 여론에 반응하랴, 속마음은 어떻든 유권자도 깍듯이 모셔야 한다. 정치자금법 개혁으로 옛날처럼 눈먼 돈 주워 담던 시절도 끝났다. 그런데도 금배지는 여전히 부정과 협잡, 특권의식의 표상이다.
밉다고 국회를 없앨 순 없다. 300명 정수를 확 줄일 수 있을까. 국민만 손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인구 9만7천명당 의원 1명이다. 우리는 17만2천명당 1명이다. 수가 적어 역설적으로 특권도 많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의사, 변호사가 귀한 시절이 있었다. 이젠 그들도 서비스 경쟁에 먹고살기 어렵다고 엄살을 부린다.
의원들도 확 늘리면 어떨까. 필요성은 인정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30여년, 이젠 국민의 의사(정당득표율)와 선거 결과로 나타난 의석수 사이의 괴리를 없애는 게 시대적 과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정당득표율은 7.23%였다. 의석은 고작 2%인 5석이다. 반면 25.5%를 득표한 민주당은 무려 41%(123석), 33.5%를 얻은 자유한국당은 40.7%(122석)의 의석을 쓸어갔다. 거대 여당·야당만 과잉대표되니, 국회는 두 당의 이전투구와 공생 공간이 됐다. 의원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 건 두 거대 정당 탓이 크다. 이념 정당의 성장도, 다양한 색깔의 군소 정당의 국회 진출도 가로막힌다.
국회 본회의.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선거제도 개혁 필요성엔 여야 모두 공감한다. 지난해 12월15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등 6개 항에 합의했다. 하지만 두 기득권 정당은 주판알을 튀기며 ‘침대축구’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소극적 태도를 탓하고, 자유한국당은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게 위헌이라는 등의 이유로 버틴다. 핑계다. 민주당도 대선 때 공약했고, 정의당 등 야 3당 대표가 단식하며 약속 준수를 요구하니 논의엔 나섰다. 하지만 필사적이지 않다. 서로를 지렛대 삼아 시간을 끄는 기득권 담합에 참여한 듯하다.
이들의 가장 그럴듯한 무기는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 반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 이익을 위해 반정치를 부추길 뿐, 설득 노력은 없다. 누릴 것 다 누리며 행세하다, 제 밥 좀 나눠줘야 할 때가 되니 ‘나는 못난이’라며 국민이 허락을 안 한다고 징징대는 모양새다.
정수 확대에 미온적인 거대 정당 앞에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원들이 9일 대안을 제시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의원 정수를 현재보다 20% 늘린 360명으로, 지역구와 비례를 2:1로 하라’는 것이다. 부정적 여론을 상쇄할 해법도 제시했다. ‘의원 수가 증가하더라도 국회 예산은 동결하고 강력한 국회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복잡할 것 없다. 먼저 내려놓고, 국민을 설득하라는 얘기다. 세비 줄이고 보좌관 줄일 테니, 정당득표율이 제대로 대표될 수 있게 의석수, 특히 비례대표를 늘려달라 호소하면 된다. 연간 5400억원의 예산이 국회에 쓰인다. 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유급 인턴 1명 등 모두 9명의 보좌진을 두고 있다. 많다. 줄여도 된다. 사표 방지, 여성 대표성 확대, 정당의 이념적 다양성 확보, 다당제로 연정 활성화 등 비례대표 정수 확대의 장점을 말하려면 차고 넘친다. 이젠 결단해야 한다. ‘더불어한국당’의 기득권 동맹이 아니라면 민주당이라도 먼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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