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이태 전 이맘때 순천 선암사에 갔었다. 오래된 아름다운 절집, 아무것도 없는 선방에서 황토색 생활복을 입고 하루를 묵었다. 겨울해가 기울고 산사의 이른 저녁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어디서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일주문에 붙은 누각에서 스님 여럿이 번갈아가며 북과 범종과 편경 등을 두드렸다. 그들에게는 저녁예불을 알리는 ‘의식’이되 아래에서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공연이다. 고저장단을 달리하는 북과 종과 편경 소리는 산 능선을 넘는 말발굽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크고 작은 바위를 때리며 내려오는 물소리 같기도 하고, 굳은 등줄기를 두드리는 방망이질 소리 같기도 하다. 그때 알았다. 그 소리들은 소란하게 보낸 하루를 내려놓는 아름다운 저녁인사라는 것을. 저녁 어스름에 녹아 겨울산을 쓰다듬으며 내려앉는 북소리와 종소리는 산에 사는 뭇생명에게 보내는 인사였으니, 그 소리를 들으며 생명들은 고단했던 하루를 접고 보금자리로 돌아가 웅크렸을 것이다. 아랫마을에선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낮은 음의 저녁공기에 섞여서 먼 데서 들려오는 북소리가 마음을 두드리고 어루만지고 했으리라. 산짐승이며, 들짐승이며, 땅강아지며, 산새들이 천몇백년 동안 한결같이 받았던 그 웅숭깊은 저녁인사에 나도 더불어 참여하니 마치 생애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들은 것같이 마음이 둥둥 울렸다. 아름다운 일상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인사를 듣는, 무너지지 않은 일상이란 얼마나 귀한 것인가. 얼마나 귀한 행운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일찍 돋아난 별들을 바라봤다. 흥분하여 먼 데 갔다가 돌아가는 일상이 무시무시하고 슬픈 것일 때도 있지만, 일상이란 치유와 위안의 시공간이어야 한다. 나의 일상은 어떠한가. 이렇게 단정한 일상을 갖는 이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십수년 전에 마을버스에서 ‘귀인’을 만나 나의 일상을 찔린 적이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아이가 어렸을 때는 열심히 ‘치료’하면 ‘정상’에 편입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으로 여기저기 치료실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때는 아침저녁 인사를 건넬 만한 일상을 갖지 못했으니, 손목이 굳게 잡힌 아이도, 영문도 모르고 둘러업힌 둘째도 나도 버석버석한 얼굴이었을 게다. 옆자리에 앉아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한 할머니가 살짝 웃으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너무 애쓰고 살지 말아.” 너무 잘하려고 애쓰면서 살지 말아, 너무 안 그래도 괜찮아. 평생을 관통하는 위안의 말을 그렇게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흔들려 억지를 쓸 때도 있고, 벅찬 일을 기어코 해내려다 아플 때도 있다. 너무 애쓰면서 살다 보면, 이렇게 악착같다 보면 일상은 무너진다. 누구의 일상도 이렇게 악착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이렇게 악착같이 살고 있다면 그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국가도 사회도 이웃도, 누군가를 악착같이 살게 한다면 그건 모두의 잘못이고 실패다. 누구도 그리 살면 안 된다. 몇년 고용과 노조 인정을 위해 사백일을 넘게 굴뚝 위에서 악착같이 투쟁해야 하고, 그가 내려와 다시 얻은 그의 일상이 여전히 변함없이 악착같이 애쓰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니. 엊저녁에는 문득 뭇생명에게 보내는 저녁인사가 듣고 싶었다. 미세먼지 가득한 아침이 되자 선암사의 차는 여전히 향기로운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선암사에도 안부를 묻지 못하겠다. 누구에겐지 모를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그리고 아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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