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논설위원
다음달 10일이면 개성공단의 가동이 중단된 지 3년이 된다.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개성공단 기업인들 사이에 공단 재가동 열망이 높아가고 있지만, 가동 재개는 여전히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무지개로 남아 있다. 그동안 방치된 시설 점검을 위해 얼마 전 신청한 개성공단 방문은 이번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한반도 정세는 바뀌었지만, 안타깝게도 개성공단 앞의 자욱한 안개는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주 한 포럼 토론회에 갔다가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의 하소연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개성 지역’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기로 한 4·27 판문점선언 합의에서 개성공단 재개의 희망을 봤다”고 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했을 땐, 문 대통령이 자신을 일부러 불러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개성공단 재개를 간절히 바라는 분이어서 같이 왔다”고 소개했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엔 문 대통령이 “북도 개성공단 재개 의지가 있다. 다 됐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아무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을 열 용의가 있다’고 했으니 올해 화두는 개성공단”이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그동안 방북 신청이 7차례나 무산된 무거운 현실에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개성공단 기업 비상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을 놓고 토론회의 전체적인 전망도 엇갈렸다. 김광길 변호사의 발제를 보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대북 제재의 촘촘한 그물을 피해가긴 어렵다. 이들 제재는 2016년 1월 4차 핵실험 이후 범위가 애초 핵·미사일 관련 군수품 위주에서 북한 경제 전반으로 확대됐다. 개성공단 재개는 대북 금융지원 금지, 섬유제품과 기계류, 전기기기의 반출입 금지 등 제재 조항이 발목을 잡고 있다. 금강산관광의 경우 관광 자체를 막는 제재 조항은 없지만 숙박시설 보수를 위한 물자 반입 등이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엔 제재엔 ‘인도적 지원’이나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 등을 위해 제재를 면제할 수 있는 조항이 있고, 미국의 대북제재강화법도 대통령이 ‘인도적 지원’ 또는 ‘민주주의적 한반도의 평화통일 기여’ 등에 필요하다는 서면을 의회에 제출하면 제재 예외가 허용된다. 논리적으로 보면,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사업임을 입증해 포괄적인 면제를 받으면 되는 셈이다. 기존의 제재 시스템을 손대지 않고 예외 조항을 통해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수 있으니, 굳이 번거롭게 제재 해제 절차를 밟을 필요도 없다. 토론회에선, 혹시 모를 개성공단 임금의 군사적 전용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공단 인근에 대형 마트를 설치해 북한 노동자의 임금을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이나 출금이 제한되는 에스크로 계좌로 임금을 지급하는 방안 등도 제안됐다. 현실성 유무는 더 따져봐야겠지만, 할 마음만 있다면 기술적인 부분이야 뭐든 해법이 없으랴. 열쇠는 결국 공단과 관광 재개에 대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아닐까 싶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월 말 열릴 예정이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 등 비핵화 조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처’ 보따리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 들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25개 남쪽 기업에서 5만이 넘는 북쪽 노동자가 활기차게 일하던 개성공단이 다시 한번 한반도 평화와 협력의 마중물로 되살아날 수 있길 기대한다.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