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를 타고 있다가 뒤에서 달려오던 트럭에 받혔다. 미처 예상치 못하고 느닷없이 날벼락 치는 굉음과 함께 뒷유리가 부서져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순간 기이하게도 저속카메라로 찍은 듯이 충격으로 크게 출렁이는 찰나의 내 몸을 본 것도 같다.(안심하시라,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숱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본 것처럼 목덜미를 잡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의 안위를 물으러 오지 않았다. 조금 지나자 견인차가 나타나고 이어서 경찰이 와서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뒤차 운전자가 핸들에 끼이고 차문이 찌그러져 못 내렸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니까 그는 나의 안위를 물으러 와줄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와중에 미안했다. 어쩌면 내가 그를 구했어야 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구급차가 와서 문을 열어주어서야 차에서 내린 그가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는데, 젊은 청년이었다. 나에게 우선 사과를 하겠구나 짐작했으나 이번에도 틀렸다. 그는 나를 쳐다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갑자기 몇 걸음씩 왔다 갔다 하면서 “나는 괜찮고, 나는 다친 데가 없고, 나는 괜찮고”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나는 이제 일하러 가야 됩니다. 나는 일하러 가야 합니다”라면서 어디론가 가려고 했다. 구급대원이 병원에 가야 한다면서 붙잡아 구급침대에 앉히는데도 그는 자꾸만 벌떡벌떡 일어나서 ‘괜찮으니 일하러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경찰은 충격으로 잠깐 정신이 나가서 그렇다고 하면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그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면서 혼절했다가 깨어났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봐왔기에 이 친구가 혹시 발달장애가 있는가 하고 잠깐 생각했었다.) 아무튼 그는 무사히 병원으로 갔고 나도 병원으로 갔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는 지난해 제대를 하고서 냉동식품 배달하는 일자리를 얻어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터였다. 게다가 트럭은 종합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아서 내 차의 수리비와 내 치료비까지 몽땅 그가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본인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지만 그는 큰 빚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그런 사정을 알고 난 뒤로 내내 그 청년의 행동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벌떡 일어나 일하러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던 그 모습이. 대체 무엇이, 제 몸을 살필 겨를도 없이 ‘나는 멀쩡하고,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주문을 외치게 만들었을까. 컨베이어벨트에서 삶을 마감한 김용균의 장례가 치러지는 걸 보면서도 벌떡 일어나 일하러 가야겠다던 그 청년이 자꾸 떠올랐다. 가방 속에 컵라면을 놓고서 지하철역 문틈에 끼여 세상을 떠난 청년도, 한여름 땡볕에 에어컨 실외기를 달다가 추락한 이도 다시 기억 속에서 떠오르면서 그 청년 얼굴이 겹쳐졌다. 대체 무엇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독한 노동을 강권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룸>에 이런 장면이 있다. 자기 힘의 원천이라고 믿는 머리카락을 잘라 어려움에 놓인 엄마에게 보내려는 잭이라는 꼬마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내 힘이 엄마 힘이 될 수 있을까요, 라고. 할머니가 대답했다. 우리 모두는 남을 강하게 해준단다. 누구도 혼자 강해지지 않아. 너와 엄마 모두 같은 힘을 갖고 있단다. 사고 이후 부실한 허리가 얼른 낫는 것이 그 친구를 돕는 일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침을 맞고 있다. 나의 무엇도, 벌떡 일어나 일하러 가야겠다던 그 청년의 힘이 될 수 있을까.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