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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100돌 3·1절에 되새기는 ‘5·18 망언’의 뿌리

등록 2019-02-25 18:26수정 2019-02-25 19:38

6·25와 냉전을 거치며 ‘반공’을 최고 국가이데올로기로 떠받들면서 친일파들의 과거는 세탁되고 은폐됐다.

‘5·18 망언’은 박정희-전두환 후계 정당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애초 망언을 확산시킨 원조 ‘친일 언론’들이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다시 발목을 잡는 건 또 한번의 매국 행위다.
망언의 주인공 자유한국당 김진태(오른쪽) 김순례 의원
망언의 주인공 자유한국당 김진태(오른쪽) 김순례 의원
아버지는 일본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을 기초한 독립운동가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따라 중국 난징에서 충칭으로 가족들도 옮겨다녔으나 1937년 어머니와 막냇동생은 끝내 영양실조로 세상을 등졌다. 해방된 조국에서 잠시 국회의원을 지내던 아버지는 6·25전쟁 통에 납북됐고 자식들은 다시 ‘빨갱이 가족’이란 멍에를 썼다. 아들은 이후 막노동과 신문배달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김상덕 전 반민특위 위원장의 장남이 회고하는 슬픈 가족사다.

김구 선생과 함께 중국에서 항일운동하던 김창숙 선생은 일제 경찰의 고문으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됐다. 장남은 19살에 고문 후유증으로, 차남 역시 독립운동 도중 세상을 떴다. 해방 뒤 반독재투쟁으로 숱하게 옥고를 치렀고 정치깡패들에 의해 본인이 재건한 성균관대 총장직에서 쫓겨난 뒤엔 여관방을 전전했다. 셋째아들이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는 2015년 해방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4부작 ‘친일과 망각’을 방송하고 이듬해 이를 책으로 다시 엮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곤궁한 삶, 이와 대조되는 친일파 후손들의 대물림된 ‘부와 권세’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완용이 축적한 땅 4300만㎡를 포함해 일제강점기 친일파 소유의 토지 4억3천만㎡(서울시 면적의 3분의 2) 가운데 국가에 귀속시킨 것은 3%인 1300만㎡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매각 처리된 것은 10분의 1인 130만㎡(2015년 6월 보훈처 통계)에 불과하다. 뉴스타파의 표현대로 이 ‘0.3%’는 유야무야된 ‘친일 청산’의 실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인 셈이다.

3·1운동 100돌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언론들에 의해 과거사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저항의 역사 못지않게 부끄러운 과거사가 분칠한 새 얼굴로 우리 곁에 살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김창숙 선생을 성균관대에서 쫓아내고 재단 이사장에 오른 이가 바로 일제 아래서 조선유림연합회 대표 등을 지내며 침략전쟁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이명세다. 그의 손녀 이인호(전 한국방송 이사장)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은 소련에서 나온 지령”이었다며 “내 조부가 친일이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고 주장한다.

만주 간도특설대에서 항일독립운동가들을 탄압·소탕하던 백선엽은 2005년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공인됐다. 그럼에도 6·25 때 전공을 앞세워 여전히 ‘참군인’이라며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되고 군 관련 행사마다 최고 상석에 올라 원로 대접을 받고 있다.

친일파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조국의 분단 현실이었다. 6·25와 냉전을 거치며 ‘반공’을 최고 국가이데올로기로 떠받들면서 이들의 친일·매국 과거는 세탁되고 은폐됐다. 일제에 ‘견마의 충성’ 맹세하는 혈서까지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 박정희의 친일 전력 역시 선거에서 한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27일 열리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 등장한 ‘5·18 망언’은 어찌 보면 박정희-전두환 후계 정당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친일’과 ‘남로당’ 전력을 ‘반공’으로 덮어온 박정희와 그 딸을 추종하는 이들이 전두환의 만행마저 여기에 끼워맞춰 ‘5·18 북한 특수군 잠입’ 요설을 퍼뜨리는 건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애초 ‘5·18 망언’을 확산시키는 데는 원조 ‘친일 언론’의 역할이 컸다. 이미 1980년 당시부터 항거하는 광주시민을 ‘폭도’ ‘난동자’로 매도하더니 ‘북한군 특수부대 잠입’ 주장을 자사 방송에 처음 등장시킨 것도 그들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 청년들의 징병 참여를 독려하고 전시채권 가두판매까지’ 나서는 등 정부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확인한 선대 사주의 행태가 주제만 ‘반공’으로 바뀐 채 후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독재와 군사반란마저 옹호하기에 이른 셈이다.

정치·언론·군·학계에 포진한 이들 ‘친일-반공’의 기득권 망언 동맹은 자신들의 과거를 합리화·미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 1년 사이 냉전의 얼음이 녹아내리자 북을 악마화해온 버릇을 버리지 못한 채, 불신과 갈등의 작은 조각이라도 찾아내 증폭시키며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다. 짐 로저스가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공언하고 주변국 기업들이 대북 투자 기회를 엿보는 시점에 이들의 발목잡기는 친일에 이은 또 한번의 매국 행위다.

공교롭게도 북-미 2차 정상회담 다음날이 3·1운동 100돌이다. 역사적 순간에 이들이 다시 망언으로 먹물을 뿌려대지 못하도록 두 눈을 부릅뜨자.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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