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논설위원
지난해 4분기 소득격차가 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4분기 기준으로 가장 크게 벌어졌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소득이 10.4% 늘어난 반면, 하위 20%인 1분위는 17.7% 줄었기 때문이다. ‘5분위 소득 증가, 1분위 감소’ 현상은 상당 기간 이어져오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5분위는 2016년 1분기 이후 2018년 4분기까지 12분기 연속 소득이 늘었다. 반면 1분위는 같은 기간 단 2분기(2017년 2분기와 4분기)만 소득이 증가했을 뿐이다.
계층별 가구 구성을 비교해보면 ‘5분위 소득 증가, 1분위 감소’ 현상은 굳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계청의 ‘2018년 4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1분위 가구주 중 무직자 비율이 55.7%에 이른다. 절반이 넘는다. 전체 가구의 평균인 19.3%와 비교해 3배 가까이 된다. 가구당 취업자 수는 0.64명이다. 돈을 버는 가구원이 1명도 없는 가구가 허다하다는 얘기다. 가구주 평균 나이는 63.4살이고, 70살 이상 비율이 42%나 된다. 원천적으로 소득 창출 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 지난해엔 경기 부진과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사정이 더 나빠졌다. 저소득층이 주로 일하는 임시·일용직과 자영업 일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무직자 비율이 2017년 4분기 43.6%에서 2018년 4분기 55.7%로 27.8% 늘었고, 가구당 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0.81명에서 0.64명으로 20% 넘게 감소했다.
반면 5분위는 가구당 취업자 수가 2.07명이다. 고임금·전문직 맞벌이 부부가 많고 여기에 취업한 자녀도 꽤 된다는 얘기다. 가구주 중 무직자 비율은 4.6%에 불과하다. 가구주 평균 나이는 50.3살이고, 70살 이상 비율은 1.6%밖에 안 된다.
결국 시장에만 맡겨서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고 소득격차를 줄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소득층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만드는 동시에 ‘재분배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익부 빈익빈’ 추세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정부의 재분배 정책이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지난해 4분기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5분위 소득이 1분위보다 몇배 더 많은지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이 9.32배다. 하지만 시장소득에 공적이전소득(국민연금, 기초연금, 사회수혜금 등)을 포함한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한 5분위 배율은 5.47배다. 재분배 정책 덕분에 소득격차가 3.85배포인트 좁혀졌다. 전체 가구의 평균 공적이전소득이 35만3천원으로, 2017년보다 29% 증가했다. 소득 계층별로 보면, 1분위가 받은 공적이전소득이 44만3천원으로 17% 증가했다. 증가율이 평균에 못 미친다. 반면 5분위는 30만4천원으로, 금액은 1분위보다 14만원 적지만 증가율은 53%로 오히려 더 컸다. 1분위와 5분위의 공적이전소득 차이 14만원으로는 시장소득 격차(809만원)를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재분배 정책의 대상이 고소득층으로까지 분산되다 보니 정책 효과가 반감됐다.
한 예로 기초연금을 들 수 있다. 정부는 65살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25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상위 30%를 제외하고 모두 똑같이 25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약 500만명에게 12조원의 기초연금이 지급됐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하위 20%에겐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린다. 만약 지난해부터 하위 20%에게 지급액을 더 늘렸다면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와 소득격차 축소에 크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복지정책의 큰 방향은 ‘보편 복지’로 가는 게 맞는다. 특히 무상교육·급식·보육처럼 아이들을 위한 영역에서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은 우선순위를 가릴 필요가 있다. ‘선별 복지’를 통해 ‘절대 빈곤’부터 개선해야 한다. 복지 확대는 재원이 많이 든다. 한꺼번에 무한정 늘릴 수 없다. 적어도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때까지는 재분배 정책의 효과가 분산되지 않도록 도움이 더 절실한 저소득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보편 복지를 기다리기에는 지금 저소득층의 사정이 절박하다.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보편 복지’의 역설?
▶ 관련 기사 : 하위 20% 소득 18% 급감…분배 개선 노력에도 더 커진 소득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