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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황교안이 ‘제2의 문재인’이 될 수 없는 이유

등록 2019-02-27 21:09수정 2019-02-28 14:00

김종구

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의 정치 입문 경로는 문재인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애초 정치 체질로 보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부터 그렇다.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대통령의 ‘불행’이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된 것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3년쯤 뒤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구속된 지 2년 뒤, 한국당에 입당한 지 불과 43일 만에 제1야당의 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정치적 속성재배’의 신기록이라 할 만큼 정치인으로의 변신 속도와 모습이 훨씬 빠르고 화려하다.

그러면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이 앞서간 길을 밟아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일단 당대표에 당선됨으로써 차기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그는 박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된 뒤 다섯달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은 바 있다. 권력의 정상에 불과 한 발짝 떨어진 거리까지 근접한 셈인데, 문제는 바로 그 한 발짝이다. 앞날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정치의 세계지만, 아무리 보아도 황 대표의 마지막 한 발짝의 성공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모시던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부터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의 유업’을 완수해야 할 임무를 안고 정치를 시작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탈권위, 반칙 없는 세상 등 ‘노무현 정신’을 구현해야 할 책무가 정치 출발선에서부터 어깨에 지워져 있었다. 그럼 황 대표가 구현해야 할 ‘박근혜 정신’은 무엇인가. 서슬 퍼런 권위주의, 소통 부재, 인권 억압, 반칙과 특권? 여기에 그의 일차적 딜레마가 있다.

‘박근혜’란 단어는 황 대표의 정치적 힘의 원천인 동시에 앞날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다. 자유한국당 경선 후보 토론회 과정에서 ‘탄핵 불복'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한 것이나, 최순실씨의 태블릿피시 조작 가능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 등은 그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웅변한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박 전 대통령의 존재는 시시때때로 황 대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게다가 때가 되면 박 전 대통령이 ‘옥중 정치’를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유영하 변호사의 ‘저격 발언’에 화들짝 놀라 그가 “박 전 대통령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불허했다”고 애써 변명을 늘어놓은 것은 박 전 대통령과의 순탄치 않을 관계를 알리는 예고편이다. 국무총리 시절 못지않게 ‘유폐된 여왕’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 황교안의 숙명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와 비판은 황 대표 승리의 또 다른 견인차다. 하지만 반대는 반대로만 그칠 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자유, 실용, 경쟁, 개방, 통합 등 보수의 ‘아름다운 깃발’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극단보다는 중도, 비판을 위한 비판보다는 대안 마련, 비관보다는 낙관, 부정보다는 긍정, 안주보다는 변화와 도전을 추구하는 것이 보수”라고 한 보수정당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은 주장했는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모습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박근혜 정권 폭정의 맨 선두에 섰던 황 대표가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연일 외치는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보수의 혁신, 보수의 재탄생은 태극기부대와의 절연이 출발점인데도 오히려 그는 태극기부대의 등에 올라타 정치를 시작했다. 보수의 혁신과 재정비는 ‘박근혜 이후’에서 시작돼야 하는데 시곗바늘을 박근혜 시절로 돌려놓았다. 황 대표는 “대한민국을 다시 되살리겠다”고 기염을 토했으나, ‘박근혜 정권 시즌2’를 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안보는 전통적으로 자유한국당이 강점으로 내세워온 분야다. 그들이 자랑하는 ‘튼튼한 안보 능력’은 실제로는 냉전과 대결을 바탕으로 삼은 구시대적 안보였다.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미증유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자 자유한국당은 방향과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 황 대표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낭만적”이라고 공격했으나 정작 ‘비낭만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은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안보와 관련된 황 대표 개인의 결격사유까지 겹쳐 있다. 앞으로 황 대표는 야당의 대표로 국가안보에 관해 이야기하는 횟수가 늘어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의 군 면제 의혹도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다. 두드러기를 이유로 군대를 슬그머니 빠진 사람이 ‘애국과 안보’를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국민의 피부에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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