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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미련이 많아서 / 김종옥

등록 2019-03-15 18:28수정 2019-03-15 18:59

김종옥
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꽃샘추위는 겨울의 미련이다. 해마다 미련이 남아서, 나는 간다, 정말 간다, 하나 둘 셋 하면 간다, 그러면서 겨울이 떠난다고 생각한다. 미련이 많은 나를 닮았다. 맥없이 물러가는 듯 보였던 이번 겨울도 꽃샘추위를 굳이 하고 가는 모양이다. 소심하고 고집 센 이별 통보에 손짓 대신 미소를 보내준다.

이맘때 꽃샘추위가 있을 때면 늘 기억에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추운 복도, 차가운 콘크리트 학교 건물. 바깥 햇볕은 따뜻한데 겨우내 식었던 콘크리트 건물은 좀처럼 온기가 돌지 않았다. 그 복도에서 서성이던 시간이 있었다. 운동장에 나가 움터오는 나뭇가지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해바라기를 하며 서 있다가도 시간이 되면 차가운 복도에 가서 숨죽이고 있던 시간이 있었다. 그곳에 서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세상 이쁜 소리는 다 모인 것같이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가득 차 있는 곳에, 어두운 섬처럼 앉아 있는 내 아이가 보였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엄마들은 요즘이 제일 우울할 때다. 환대받지 못하는 처지라는 걸 실감하는 때이다. 주눅이 들어 쭈그러든 어미의 어깨를 아이가 볼까봐 열심히 심호흡을 해도, 내 아이를 두고 몸을 외로 꼬면서 멀찌감치 비켜 다니는 또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된다. 아이에게 맞는 환경을 마련해달라고 일일이 짚어가며 요청하는 일이 그악스러운 통사정처럼 느껴질 때 그 구차함에 야속하고 슬프다.

올해도 교육청 문 앞에서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엄마가 주저앉아 울었다. 밤새 울면서 썼다는 호소문에는 며칠째 아이를 업고서 학교 계단을 오르내리는 이야기, 특수학교도 입학유예도 거절당한 이야기,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가락만 빨아서 바지가 흥건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특수유치원에 아이를 보냈다는 그 엄마는 아마 처음 접하는 외면이었을 게다. 자신도 아니고 새끼에게 향하는 외면에 몹시도 당황하고 서러웠을 게다. 나는 그것이 이제 먼 길의 시작임을 알기에 먹먹했다. 공유하면 안 될 공간을 공유당한 불쾌한 표정으로 밀쳐내는 아이들, 그저 앉아만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생색을 내려 하는 의미 없는 교실, 그 예의없는 시간의 시작이기에.

그날은 하필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었다. 비가 올듯 말듯 차가운 수증기와 미세먼지가 섞여서 뿌옇던 그날 아침, 나는 우리 세상에 가득 차서 떠나지 않는 무거운 먼지를 보았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이란 말이 있단다. 먼지차별이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인종차별에 대한 용어였는데 이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에 쓰인다. 소수자,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먼지같이 사소하면서도 일상적으로 배어 있어서 잘못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매너를 배우지 못하고 자랄까. 아이들이 그들 인생 최초의 친구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만나서, 어울려 사는 세상의 이치를 자연스레 배우게 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들까.

나는 미련이 참 많은 인간이어서, 어려서 이사를 하면 살던 집 담벼락을 쓰다듬으려 몇번씩 슬그머니 가보곤 했다. 졸업식을 마치고도 빈 학교를 해질녘까지 서성거렸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이별을 하는 데 그 정도는 해줘야 예의인 것 같아서. 좀 더 청승을 떤다면 생을 마치고서도 아마 이곳에서 오래도록 서성이다가 떠날 테지. 그런데 지금 같아선 아예 영 못 떠나고 서성이고만 있을 것 같다. 내 아이에게 너와 함께한 생이 좋았다고, 너도 잘 마무리하라는 인사를 어찌 전하겠나. 미세먼지가 많은 이 세상에 남겨두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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