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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순억의 학교 이데아] 노르웨이 ‘숲속 마을’의 비밀

등록 2019-03-31 17:44수정 2019-04-10 16:44

안순억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깨끗한 햇살이 반짝이는 강가에서 일광욕과 수영을 즐긴다. 울창한 숲속 ‘교도소 마을’의 예쁜 집들이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고 복역 중인 그들의 ‘빵’이다. 참혹한 백색테러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에도 최고구형량이 21년에 불과한 법을 바꾸지 않는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노르웨이 교도소 실제 모습이다. 끔찍한 범죄에 거세와 사형을 외치는 목소리가 무한 반복되는 분노사회를 사는 우리 눈에는 ‘속 터지는 성인군자’ 같은 제도지만,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범죄율, 재범률로 평화를 유지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경제 불평등, 반인권, 독재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일수록 사형과 같은 공포기제로 질서를 휘어잡는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노르웨이의 평화의 근간에는 상생을 우선하는 복지와 학교 교육이 있다. 널리 알려진 ‘멈춰’(STOP)와 같은 폭력 대처 프로그램은 공동체의 성숙한 책임감을 잘 보여준다. 학교는 미래의 평화를 먼저 그린다.

새 학기, 학교폭력이 가장 많은 때다. 서열을 다투는 ‘동물 본능’이 크게 작동하고, ‘욕 끝마다 가끔 말’이 나오는 자존감 낮은 학생이 많은 학교일수록 상황은 심각하다. 집단폭행, 성폭력도 일어나지만, 사소한 말다툼과 장난이 감정싸움이 되어 ‘폭력사건’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무엇이건 일단 폭력의 이름이 붙고 신고, 조사, 조치와 같은 ‘준사법절차’가 진행되면, 학교는 관련된 사람들의 결코 ‘사소하지’ 않은 고통과 파편처럼 깨지는 교육 무기력에 신음한다. 가·피해 학생, 학부모가 화해를 해도 학폭위는 열리고 조치는 강제된다. 경미한 조치도 생기부에 낱낱이 기재되면서 입시 변수와 폭력의 주홍글씨로 작용한다. 서슬 퍼런 엄벌주의로 가득한 법과 지침이 사생결단과 ‘법대로’를 부른다. 빈발하는 소송에서 ‘범법자’ 위험에 직면한 교사들은 교육적 해결 의지보다 매뉴얼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이 불안의 공간을 사법시장이 파고들면서 재심과 행정심판 건수는 4년 동안 250%나 증가했다. 우리 교육이 사교육시장 뒷바라지를 넘어, 급기야 사법마켓과 보험시장의 블루오션이 되어 ‘학교폭력 전문산업’ 육성에 기여하는 데 이르고 있다.

다행히 교육부와 국회가 나섰다. 학교폭력 예방법 개정안이 지난 26일 국회 교육위를 통과했다. 현재 학교에 설치된 학폭위를 교육지원청으로 넘겨 전문성을 높이고, 관계 회복이 먼저인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학교 자체 해결의 길을 텄다. 서면사과 등 교내 선도형 조치인 1∼3호에 대해서는 생기부에 기재하지 않는 시행규칙도 개정 예정이다.

학교 숨통을 틔워주는 훈풍이다. 처벌 만능의 감정적 분노를 자제하고, 어떻게 아이들의 회복과 성장을 도울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작용한 드문 사례다. 교육이 화답할 때다. 폭력이 은폐 축소되거나 피해 학생 보호가 약화될지 모른다는 불안도 잠재워야 한다. 극약처방에도 악착같이 살아남은 폭력 바이러스는 세대와 공간을 넘나들며 무한증식하기 마련이다. 그 사슬을 먼저 끊어내는 곳은 단언컨대 학교여야 하고, 이번 개정안이 그 전환점이다.

나는 폭력에 교육의 힘을 소진하지 않는 학교들을 알고 있다. 공동체의 건강한 커뮤니티와 평화 감수성을 기르는 교육이 생생한 학교들이다. 자치 커뮤니티는 법보다 힘이 세다. 교직원회의와 학부모회의 법제화, 학교운영위에 학생위원 참여 보장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 이런 학교는 더 많아진다.

사랑을 배우고 나누는 것이 교육이다. 잘못의 책임을 차갑게 물을 때도, 끝끝내 치유와 성장을 위한 따뜻한 손길을 거두지 않는 것이 교육의 숙명이다. 정말 힘겹지만, 이 문화 속에서 자라 어른이 되어야만 죄수조차 이웃으로 품는 평화로운 나라가 저쯤 다가온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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