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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순억의 학교 이데아] 믿고 넘기고 맡겨야 교육이 산다

등록 2020-02-09 18:18수정 2020-02-10 02:38

안순억 ㅣ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금 추세라면 2100년 한국 인구는 1800만명까지 줄어들고, 2065년 학령인구(만 6~17살)는 전체 인구 대비 2000년의 17.1%에서 7.9% 이하로 줄어든다고 예측할 수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226곳 중 97곳이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인데 그나마 있는 학생들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서울과 대도시로 나온다. 학생이 가면 돈도 따라가니 지방의 빈곤과 소멸은 연쇄적 현상이다. 인구절벽과 지방 황폐화, 지역 간 계층 간의 가파른 격차에 대한 비장한 맞춤형 대책을 뺀 미래 논의는 이제 공허해졌다.

지역과 계층에 따른 교육 환경과 여건이 천차만별인 시대다. 획일적 국가 통제 방식의 거대 권력 시스템은 변화를 감당하기는커녕 제 몸을 뒤척이기조차 힘겹다. 학교 특성과 구성원들의 요구가 각기 다르고, 미래 인재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학교는 똑같은 국·검정 교과서를 들고 수능 종착지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학교마다 각기 달라도 법정 수업일수와 시수에 붙잡힌 학교는 정부 지침만 목을 빼고 기다린다. 남는 것은 굼뜬 정부에 대한 비난과 이해집단 간의 갈등뿐이다. 교육부는 사사건건 억울하고, 공동체가 자치력으로 마땅히 감당해야 할 ‘그 지역과 학교’의 절박한 교육 과제들은 저절로 면죄부를 받는다.

문제를 단순화하면 해법도 단순해진다. 교육 현장의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여기지 말고 주인으로 세우면 된다. 기적의 열쇠는 신뢰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자치의 힘밖에 없다. 권한과 책임을 과감하게 넘겨야 한다. 우리의 교육자치는 안개처럼 불안정한 실체다. 학교 민주주의는 태풍 앞의 여린 나무다. 보수정당은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겠다며 그나마 붙은 숨통을 조인다. 현 정부 또한 교육민주주의 회복과 교육자치 강화를 국정 과제로 내걸었지만, 집권 하반기에 이르러서도 발걸음은 무겁고 더디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금지를 제외하면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교과서 자유발행제, 단위 학교 자치 강화, 교육부 권한과 기능 개편 등 무엇 하나 시원한 진척이 없다. 학교는 여전히 한 해 1만3973개의 공문을 처리하고, 제조 브랜드별 농구공 수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국회의원 요구 자료를 받은 교사는 체육창고를 뒤진다.

핀란드 교육을 눈여겨봐야 한다. 중앙집권적 통제 체제를 고수하던 나라에서 성공적인 자치와 분권으로 전환한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1990년 초에 닥친 금융위기였다. 실업지수는 4%에서 18%로 폭증했고, 국채 규모가 국민총소득의 60%에 육박했다. 강력했던 관료행정은 재정난으로 교육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되자 힘을 잃었다. 교사들과 학교 주체들이 팔을 걷고 그 권한과 책임을 꿰찼다. 어려운 재정 현실 속에서 가능한 최적의 교육을 결정하고, 학교 운영을 획기적으로 조정하였다. 자치와 분권과 신뢰가 만든 놀라운 성과들이 모여 지금의 핀란드 교육을 만들었다.

성공적인 교육자치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우리 여건도 나쁘지 않다. 2017년 2월, 교육체제 전면 혁신을 추진할 ‘교육대통령’을 원한다는 시도 교육감의 요구에,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전적인 공감”과 “긴밀히 협력하여 교육과제들을 해결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어린 시절 교사가 꿈이었다는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개혁 완수를 위해 총선 출마를 접었다. 국민이 뽑은 17명 교육감들은 자치와 교육 민주주의 대의를 위해 손을 맞잡을 의지와 능력이 충분하다. 교사와 주민들의 힘으로 학교를 살려낸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교육청과 자치단체가 힘을 모은 교육 협력 사례들은 교육자원을 능동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어물쩍 때를 놓치면 관성이 개혁을 잡아먹는다. 민주주의의 들숨과 자치의 날숨으로 살아가는 싱싱한 교육생태계를 위해 모두의 힘과 꿈을 모을 때다.

*그동안 ‘안순억의 학교 이데아’를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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