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는 2006년 10월9일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채택된 결의 1718호로 문을 열었다. 2017년 11월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 발사 이후 채택된 결의 2397호까지,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는 모두 10건에 이른다. 모든 결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북-미 협상이 교착 국면에 접어든 지금 새삼 눈여겨볼 만하다. “안보리는 북한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북한의 결의 이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는 제재를 강화, 변경, 유예, 해제하는 문제를 포함해 제재의 적절성 여부를 검토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한다.” 북한 변호사들이 때아닌 중국 순회 방문에 나섰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3일 베이징에 본사를 둔 더헝법률그룹의 초청에 따라 방중한 이들이 1일 베이징을 시작으로 오는 13일까지 지난·칭다오·상하이·선전 등지를 돌며 ‘투자 설명회’를 연다고 전했다. 더헝 쪽은 “대북 제재 해제에 앞서 북한의 대외무역·투자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행사”라고 밝혔다. 행사에 참가한 북쪽 변호사들은 대외경제성에 딸린 조선대외경제법률자문사무소 소속이라는데, 이 기관에서만 변호사 20여명이 일하고 있단다. 북-미 협상이 삐걱대고 있음에도 북쪽은 ‘제재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대외 경제협력과 교류를 발전시켜,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 생활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개발구법’ 제1조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아래서 ‘대외 경제협력과 교류’를 발전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인민 생활을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지난해 4월20일 북한이 당 중앙위 7기 3차 전원회의를 열어 핵·경제 병진노선의 ‘완성’을 선언하고, 경제 개발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핵’을 떼어낼 준비가 됐음을 국제사회에 공표한 게다. 법·제도적 측면만 놓고 보면, 북한의 개혁·개방 의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북한은 이미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전후로 대외 경제 관련 법령을 대대적으로 정비해놨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불과 20여일 앞둔 2011년 11월29일엔 외국인투자법·외국인기업법 등 5개 법령을, 12월3일엔 라선(나선)경제무역지대법 등 2개 법령을 손봤다. 김 위원장이 사망하고 나흘 만인 12월21일엔 외국투자은행법 등 7개 법령을 정비했다. 김 위원장의 장례식이 12월28일에나 치러졌다는 점에서, 미리 예정됐던 조처로 보인다. “그에게 ‘당신은 합의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저녁 열린 한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 쪽에 핵무기와 핵물질·핵시설, 탄도미사일과 화학·생물학전 프로그램 등의 완전한 해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 인프라 제거와 사찰단의 완벽한 접근권, 핵 과학자·기술자 이직 등까지 요구했다. 이쯤 되면 미국이 원한 게 ‘협상’인지 ‘항복선언’인지 헛갈린다. ‘손바닥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탱고를 추는 데는 2명이 필요하다.’ 북-미 협상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표현이다. 핵·미사일 시험을 멈춘 북은 이미 개혁·개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제재의 효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목적만은 달성됐다. 그러니 지금, 합의할 준비가 안 된 건 누구인가?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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