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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트럼프 원맨쇼와 미국 민주주의 / 황준범

등록 2019-04-25 17:37수정 2019-04-26 09:28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러시아 스캔들’에 관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448쪽짜리 수사보고서가 공개된 뒤 워싱턴에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모도 사법방해도 없다”며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달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공개한 4쪽짜리 요약본과 달리 이번 보고서에는 뮬러 특검 해임 시도 등 트럼프의 집요한 사법방해 의혹 사례 10여건이 나와 있다. 뮬러 특검은 “대통령이 분명히 사법방해를 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우리는 그렇게 적시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처분을 정치권으로 넘긴 것이다.

핵심인 탄핵 추진 여부를 놓고 야당인 민주당은 당내 탄핵론을 잠재우려 기민하게 움직였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지도부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다수 대선 주자들이 의회 조사에 집중하자고 했다.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3분의 2 찬성을 얻을 수 없어 탄핵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탄핵 추진이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건강보험 등 다른 이슈들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타당한 현실론이다.

하지만 “정치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는 반론도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앞장서 이를 명확히 했다. 그는 “이건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모든 대통령에 관한 것”이라며 탄핵을 주장했다. 트럼프를 그대로 두면 다른 대통령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권력을 남용하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미국 역사상 세차례의 대통령 탄핵 논의 전례와 비교해도 트럼프의 행위가 가볍지 않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의회 동의 없이 전쟁장관을 해임했다는 이유로 탄핵 절차가 진행됐으나 상원에서 1표 차로 탄핵을 피했다.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사생활과 관련해 다른 재판에서 불거진 위증이 빌미가 돼 탄핵소추됐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트럼프와 ‘데자뷔’로 꼽히는 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하원에서 탄핵소추 표결이 이뤄지기 직전에 스스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 사례다. 닉슨은 도청 사건을 은폐하려 거짓말을 했고 아치볼드 콕스 특검을 끝내 해임했다. 조지 콘웨이 변호사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도청을 사전에 몰랐던 것과 달리, 트럼프는 측근들이 (그의 사법방해 행위를) 막으려 한 ‘원맨쇼’였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닉슨과 다른 점은 특검 해임이 참모들의 저항으로 실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통령직 끝내기: 탄핵의 힘>의 저자 조슈아 매츠는 <뉴욕 타임스>에 “(사법방해 행위 지시에) 내부적 불복종이 있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반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어지러운 와중에 트럼프 원맨쇼는 계속된다. 그는 ‘폭풍 트위트’ 등을 통해 민주당과 ‘가짜 뉴스’를 비난하고, 전·현직 참모들의 의회 출석과 자료 제출을 막고, “탄핵이 개시되면 대법원으로 가겠다”고 주장하는 등 쉴 틈 없는 공격을 퍼붓고 있다. 대통령의 행위와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논쟁보다는 ‘트럼프 대 반대 세력’의 기싸움으로 만들려는 것 같다. 민주당은 끙끙 칼을 갈고 있을 뿐이다. 그사이 미 국민은 각각 친트럼프, 반트럼프 입장만 강화하는 분위기다. 미국 사람들은 이제 트럼프의 어떤 행동·발언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미래 세대에 끼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실행 여부와는 별개로 탄핵 자체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더 활발하게 진행돼야 하는 게 아닐까. 미국이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가 아니라 퇴행 사례의 대열로 들어설 수도 있는 순간이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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