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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순억의 학교 이데아] ‘반페미니즘’과 교실의 여성혐오

등록 2019-04-28 17:15수정 2019-04-29 13:49

화들짝 깨치는 일들이 있다. 나는 ‘교육계에 30년 이상을 몸담아온 오십대 남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다. 젠더박스에 갇힌 완고한 가부장적 남성 특권의 이미지와 꼭 맞아떨어진다. 날카로운 페미니즘 햇살 아래에 서니, 일상 곳곳에서 노력 없이 포획한 편익의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고도성장 세대 남성 기득권의 산물이었음을 인식하면서 여성과 청년을 대하는 자세가 조심스러워졌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꾸어가는 역사적인 순간은 그렇게 나 자신으로부터 왔다.

그런데 최근에 나의 변화와 반대의 징후가 곳곳에서 잡혔다. 모든 기득권이 해체된 세대가 ‘반페미 전사’로 결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페미니즘을 주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20대 남자 현상’을 다룬 <시사인(IN)> 기사를 만났다. ‘반페미니즘 신념형 20대 남성’이 주도하는 이 세대는, 권력은 특권을 요구하는 여자들 편이므로 남성이 마이너리티이고,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로써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훼손하는 기획’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른 성별·세대와 명백하게 갈라지는 ‘20대 남자 현상’ 방정식의 해 앞에서 받은 충격은 컸다.

여성과 20대 남성 모두에게 ‘가해의 원죄’를 지닌 세대임에도, 끝내 이 현상을 염려하는 이유는 두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이들이 주적으로 ‘페미니즘’을 놓은 것이 온당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누려본 적도 없는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불공정한 ‘약자 코스프레’로 페미니즘을 상정했을 것은 짐작 가능하다.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뭔가 이상하다. 이들의 분노는 젠더 문제 뒤에 작용한 환경이나 사회 구조의 영향을 착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타고난 것이든 키워진 것이든 남녀는 학습 능력과 결과에서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실제로 초중고 교육과정과 수능을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여학생들의 성취는 남학생들을 압도한다. 활동량이 많고 직설적인 사람은 꾸중과 벌칙을 더 많이 받으며 피해의식을 내면화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즉 지금의 학교 시스템과 무한경쟁의 각자도생 사회가 ‘공정의 기준과 경계’를 두고 남녀 특성과 환경에 따른 유불리 논쟁을 더욱 부추기는 셈이다. 결국 불공정한 것은 사회 구조와 교육 시스템이다.

다음은 젠더갈등이 교실을 침공할 때의 위험이다. ‘반페미’ 현상은 교실에서 노골적인 ‘혐오’로 발전한다. 최근 학교 안의 가장 두드러지는 혐오 현상의 맨 앞자리에 여성 혐오가 있다. 모든 페미니즘이 ‘남성 혐오’인 양 몰고가는 선정적인 일부 언론 화법과 ‘꼴페미’를 ‘참교육’하는 온라인 공간의 감각적인 콘텐츠가 기름을 붓는다.

장난과 범죄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부키’ ‘시궁창’ 등의 외모 비하와 ‘섹드립’이 수치심과 모멸감을 자극한다. 일탈을 꿈꾸는 십대 특유의 아드레날린은 이제 여성 혐오를 향한다. 차별에 대한 기준도 깐깐해졌다. 힘쓰는 일을 남자만 시키는 것은 차별이다. 줄넘기나 달리기에서 남녀에게 다른 기준과 목표를 적용하는 것도 여자만 봐주는 불공평한 일이 된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여교사는 ‘여성차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비호감 인물이거나 ‘메갈’로 의심받는다. 이에 대적하는 극단적인 남혐도 함께 똬리를 튼다. 예민한 시기에 입력된 젠더 감수성은 성인이 되어서 또 다른 서사를 만드는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묵과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와 교육이 페미니즘이라는 고난도 숙제를 받았다. 날선 언어가 난무하는 불편한 대화이지만 어쩌면 우리 삶에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개척하는 진짜 작업이기도 하다. 개인의 노력에 맡길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집단지성을 작동시켜 풀 문제다. ‘반페미’를 양산하고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교육 시스템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갈등도 길게 보면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다.

안순억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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