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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자율성 확대부터 시작하라

등록 2019-04-30 16:03수정 2019-05-01 10:00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로버트 버클리는 내가 세계은행에서 일할 때 알게 된 선배 경제학자다. 한참 어린 신입인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고, 백면서생이었던 나에게 많은 인생 조언도 해주었는데, 뭔가 서로 통하는 데가 있어 나중엔 나이와 직급을 넘어 친하게 지냈다. 그가 한 말 중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말이 하나 있다. 전문 직업인의 인생 단계를 10년 단위로 나눈 얘기다.

“20대는 이론을 배울 때다. 30대는 현장에서 이론을 적용하는 걸 배울 때다. 40대는 그 이론과 현장 경험을 결합해 본격적으로 중요한 일을 할 때다. 50대는 이 모든 경험을 살려 조직과 후배들을 기를 때다.”

오랫동안 지적 수련이 필요한 전문직에게 해당하는 얘기지만 일반 회사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후배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이 말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먹혔는지 자신이 없다. 특히 임원 직급에 있는 사람들로서 자기의 주요 역할 가운데 조직과 후배를 기르는 것도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지도자는 앞장서서 정복도 해야 하지만 뒤를 이을 사람도 길러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에선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직장 생활 내내 늘 이게 고민이었다. 선배 버클리의 말대로 50대인데도 조직과 후배 직원을 길러주는 걸 자기의 주요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엔 왜 드물까? 왜 한국에선 후배 육성이 지도자의 주요 과제로 제기되지 않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어렸을 때부터 학습한 한국 사람들이 모여 만든 타율적 조직에서 좋은 리더는 과연 무엇일까? 이 완고한 장벽을 깨기 위해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나는 그 단초를 한 깨달음에서 찾았다. 내가 임원이 처음 되어 사장이 주재하는 주간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한 지 1년쯤 되던 때 얻은 것이다. 그때 회사에선 신규로 허용된 절세용 금융상품을 파는 캠페인이 걸려 있었다. 실적 보고를 받던 사장이 고객에게도 좋은 것인데 지점 영업직원들만 독려하지 말고 다른 사업부도 동참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사장이 자기 이름을 호명하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던 임원들이 갑자기 너도나도 나섰다. 부서와 직급별로 목표치를 어떻게 정하고, 중간 성적을 어떻게 점검하고, 잘한 부서엔 어떤 상을 줄 것인지를 놓고 온갖 창의적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난 1년 동안 이토록 활기찬 임원회의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미래와 사업전략과 조직의 발전을 두고 얘기해야 할 때는 눈만 굴리면서 말을 아끼고 사장 눈치만 보던 분들이 목표치 할당이란 주제가 나오자 그렇게 반갑고 즐거울 수가 없어하니 말이다. 그 뒤로도 나는 그때만큼 모두가 흐뭇하고 신이 난 임원회의를 본 적이 없다.

그때 나는 한가지를 깨달았다. 아하, 이분들은 대부분 바로 이걸 잘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분들이구나. 위계적 조직에서 위에서 받은 할당량을 아랫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쪼아대 얻은 성과로 올라온 분들이구나. 나는 이 깨달음의 의미를 오랫동안 속에서 되새겼다. 그러면서 내 오래된 고민, 즉 왜 한국의 리더는 이 모양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 깨달음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권력의 문제였다. 윗사람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어서 생기는 문제였다. 한국 사회는 제왕적 권력만을 이해한다. 최고 권력자에게 모든 권력을 부여하고 아랫사람은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궁극적으로는 최고 권력자가 나누어 주는 부스러기 권한만을 갖는 보조자로만 생각하는 습관이 깊이 박혀 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조직의 미래, 비전, 전략, 인사, 자원 배분도 모두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예를 들어 조직의 리더라면 결국 예산권과 인사권, 징계권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그 권한을 중간 조직장에게 주는 곳은 매우 드물다.

한마디로 한국 조직은 민주적이지 않다. 타율적이다. 최소한의 자율성(autonomy)마저도 없는 조직이 너무 많다. 그러니 유연성도, 창의성도 없게 마련이다. 그런 조직의 중간 지도자에게 후진 양성은 자기 일이 되기 어렵다. 톱이 하자는 대로 수동적으로 따라가면서 아랫사람을 들볶아 그가 요구하는 “실적”을 내면 된다. 사정이 그러한데 후계 양성은 뭐고 창의성은 무슨 헛소리이겠는가!

민주적, 창의적인 사회를 원하는가? 자율성 확대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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