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2일 서울교대 인문관에 성희롱 규탄 대자보가 붙어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사태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서울교대라는 우리의 공동체가 지녔던 과거의 잘못된 관습과 그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우리들 모두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13일 김경성 서울교대 총장이 담화문을 냈다. 여학생들의 얼굴을 평가하는 등 성희롱 자료를 만들어 돌려 본 국어교육과 3학년 학생 5명에게 유기정학 2주, 4학년 학생 6명에게 유기정학 3주의 징계를 내린다고 밝힌 지 사흘 만의 일이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이라는 교대의 특수성은 제쳐놓자. 학내에서 여러 해 동안 집단 성희롱이 벌어졌는데 그 학교의 수장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라고 말하는 건 책임 회피다. 더구나 여학생이 대다수인 교대에서 소수의 남학생이 저지른 성희롱이 어째서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을까.
김 총장은 “문제를 제기한 ‘신고인’ 학생들이나 ‘피신고인’ 학생들 모두 장차 교사로서의 꿈을 키워오던 학생들이라 조사하고 심의하는 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정작 담화문 어디에도 피해자 보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피해 여학생은 담화문이 나오기 하루 전 나눈 통화에서 “조사 과정에서 학교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고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장의 신중함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입증된다.
성폭력 사건 처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처라고 할 피해자-가해자 ‘공간 분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 여학생은 “학교 쪽에 여러 차례 공간 분리를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3월 최초 폭로 직후 잠깐 분리됐다가 가해 남학생들이 ‘수업권 침해’를 주장하자 교수들이 (분리) 해제했다. 교대 특성상 같은 과 학생이면 거의 모든 수업을 같이 듣기 때문에 (분리가) 어렵다는 논리였다”고 말했다.
매일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주치는 상황은 2차 가해를 유발했다. 피해 여학생은 “조사가 끝나서도 가해 남학생이 직접 접근해 명예훼손 등을 언급하며 위협적인 말을 했다”고 폭로했다. 이 때문에 다시 학교 쪽에 공간 분리를 요청했지만 또다시 돌아온 답변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학교는 학칙에 명시된 피해자에 대한 고지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피해 여학생은 “조사가 이뤄진 한달 동안 아무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 여학생들이 성희롱 입증 증거를 직접 모아 학교 쪽에 전달하는 적극성을 보였음에도 말이다.
학교의 대응은 다분히 가해자 중심적이다. 한 재학생은 징계 발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예비 교사’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높은 윤리적 의식을 요구하는 동시에 성범죄에 관해서는 관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불성설”이라며 “가해자들은 경징계를 받고도 ‘징계를 받았으니 무엇이 문제냐’고 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불행히도 이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일 국어교육과 성평등 공동위원회가 폭로한 3월14일께 국어교육과 남성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한 졸업생이 이미 “함부로 교사자격정지 시킬 사람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재학생들을 다독였다. 학교의 ‘솜방망이’ 징계를 예측이나 한 것 같은 자신감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불신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에는 손글씨로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공간에 있게 만든 학교를 규탄한다’고 쓴 글이 ‘서울교대’, ‘withyou’, ‘연대합니다’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잇따라 올라온다.
문제는 유기정학이 끝난 뒤다. 피해 여학생들은 “남은 학교생활과 더불어 교직 사회에서도 가해자들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한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를 위한 서울교대는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유진
24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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