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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제재의 틀’이란 족쇄 / 정인환

등록 2019-05-30 18:02수정 2019-05-31 09:46

정인환
베이징 특파원

‘맑은아침’표 표백치약을 손에 든 남성 모델이 환하게 웃고 있다. 매대 간판에는 “니코틴은 말끔히 제거되고, 하얀 이발(치아)로 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평화자동차’가 선보인 스포츠실용차(SUV)와 ‘푸른하늘’의 고화질(HD) 평면 텔레비전도 눈길을 끈다. 지난 20~24일 북한 평양 서성구역 연못동에 자리한 3대혁명 전시관에서 열린 제22차 평양 봄철 국제 상품 전람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흥미로웠다.

지난해 5월21~2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제21차 전람회에는 260개 기업이 참여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올해 전람회에 “중국·러시아·파키스탄·폴란드 등지에서 450개 기업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사상 최대 규모란다. 제재에 꽁꽁 막힌 상황인데도 대북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분명히 해두자. 북이 발사한 건 단거리 미사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은 29일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지난 4일과 9일 강원 원산과 평북 구성에서 단거리 발사체와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앞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25일 “유엔 안보리 결의는 북한이 어떤 형태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결의 위반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북이 결의를 위반했다면 안보리를 소집해 추가 제재를 논의하는 게 순서다. 어찌된 일인지 섀너핸 장관 대행도, 볼턴 보좌관도 그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북이 다시 ‘도발’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만 강조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는 지난 27일 일본 도쿄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볼턴 보좌관을 바로 앞에 앉혀두고 이렇게 말했다.

“보좌진은 안보리 결의 위반일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김정은 위원장이 관심을 끌고 싶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누가 알겠나? 중요한 건 핵실험도,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도 없다는 점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대화는 중단됐다. 책임 공방만 난무하는 가운데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제재가 굳건하니 서두를 필요 없다”며 여유를 부리고, 북은 “힘의 사용은 결코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다”(29일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담화)라고 맞받는다. 판에 박힌 틀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직후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전제가 있었다. ‘대북 제재의 틀’이다.

전쟁 위기로 치달았던 취임 첫해엔 그럴 만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상황은 달라졌다. 북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 맞물리면서 평화의 기운이 만들어졌다. 남과 북의 정상은 세차례나 얼굴을 마주했고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열렸다. 더 나아가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판에 박힌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북 제재와 비핵화는 등가교환의 대상이 아니다. 경제와 안보는 맞바꿀 수 없다. 지금까지 북핵 협상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도 경제와 안보의 교환을 시도한 탓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제재도, 핵무기도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판에 박힌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지난 17일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의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과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지원을 승인·확정했다. 꼭 2년이 걸렸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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