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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아직도 ‘반국가’로 묶인 ‘반독재’ 투쟁, 한통련

등록 2019-06-10 16:43수정 2019-06-11 09:38

김이택

‘빨갱이’ 여론조작에 앞장섰던 사이비 언론과 ‘독재의 후예’들은 여전히 ‘친북’‘좌파’ 타령을 멈추지 않는다. 정부가 이념의 적대를 지우겠다면 ‘반독재’ 투쟁을 아직도 ‘반국가’ 프레임에 묶어놓은 시대착오부터 풀어야 한다. 방일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통련의 누명을 벗겨내기 바란다.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건 하나가 있다. … 사형 다음의 중형을 선고한 판결에 그렇게 아무 감정도 고뇌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재판장이란 사람이 원망스러웠다.’(박우동, <판사실에서 법정까지>)

5공 시절 ‘대법원판사’를 지낸 박우동 변호사는 자서전에서 한 간첩 사건을 콕 집어 ‘공소사실 자체에서 조작성이 보였다’며 ‘국내 간첩활동이라는 것도 어디에 발전소, 군부대 있다는 것을 탐지했다는 판에 박은 시나리오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 ‘간첩’은 결국 1986년 무기징역이 확정돼 12년을 복역한 뒤 2008년에야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박 변호사는 ‘항소심 재판장에게 부아가 치밀었다’고 했으나 당사자인 강희철씨는 “내가 무죄라는 걸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했다”며 1심 재판장을 원망했다.

바로 그 1심 재판장이 최근 법정에서 검찰을 향해 격한 감정을 토로했다. “포장만 근사하게 해서 내놓는 사건이 꽤 있다. 그런 포장들이 소비자를 현혹한다. … 이런 수사가 허용된다면 우리 국민들한테는 중대한 위협이다.” 자신이 구속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뒤에야 깨달은 모양이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고문’으로 사건 조작하던 ‘독재’ 시절 ‘복붙 판결’이 다반사였다. 실제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판결문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은 오자까지 그대로 베꼈다. 강씨 사건의 ‘1심 재판장’ 양승태 판사는 모두 4건의 간첩사건을 맡아 중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재심에서 고문 등으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다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박정희 정권 시절 44건, 전두환 시절 46건의 조작간첩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 가운데서도 1977년의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사건’은 유별나다. 1980년 야당 지도자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빌미가 된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반국가단체로 만든 첫 판결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한민통 공작원한테 지령받았다는 간첩죄로 10년형을 받았지만 정작 한민통이 왜 반국가단체인지는 재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한민통 인사는 그때까지 아무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의 ‘복붙 판결문’에 한줄 들어간 뒤 판례로 남아 김대중 사건 판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시 인용됐다. 유신 직후 국외에서 한민통 결성을 추진한 김대중을 옭아매고 반유신 투쟁을 막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한홍구 교수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참여정부 국방부의 과거사진상규명위도 밝혔듯이 근거가 된 재일 중앙정보부 수사관의 ‘영사증명서’와 정체불명 ‘자수간첩’의 법정 증언 역시 허점투성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한민통이 반국가단체라는 근거가 없다며 국가의 사과와 명예회복 조처를 결정하려 했으나 정권이 바뀌며 불발됐다. 현직 때도 ‘수괴’ 혐의를 벗지 못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4년 재심에서 내란음모죄 무죄를 받았으나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는 무죄 대신 사면을 이유로 한 면소 판결을 받았다. 한민통(현 한통련)도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남아 있다.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손형근 의장(오른쪽)과 김지영 재일한국민주여성회장이 일본 도쿄의 한통련 본부 사무실에서 자신들이 발간하는 출판물을 가리키고 있다. 도쿄/김종철 선임기자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손형근 의장(오른쪽)과 김지영 재일한국민주여성회장이 일본 도쿄의 한통련 본부 사무실에서 자신들이 발간하는 출판물을 가리키고 있다. 도쿄/김종철 선임기자
고문으로 조작된 공안사건 피해자들은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있지만 정작 조작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단죄는 거의 없다. 영사증명서가 여전히 남아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을 옥죄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법’으로 조작을 묵인·방조해준 판검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이 조작간첩을 중형으로 ‘포장’한 것은 까맣게 잊고 검찰이 포장했다고 탓하는 양 판사 같은 이가 나오는 것이다.

‘빨갱이’ 여론조작에 앞장섰던 수구보수 언론과 ‘독재의 후예’들도 여전히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친일 잔재인 ‘빨갱이’‘색깔론’에서 탈피해 이념의 적대를 지우자는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21세기에 웬 친일·빨갱이 타령이냐’더니 정작 자기들은 ‘친북’‘좌파’ 타령을 멈추지 않는다. 좌우합작으로 이룬 광복군의 성취를 기리는 추념사에 ‘6·25 영령’과 천안함·연평도 유족을 끌어들이더니 결국 현직 대통령에게 ‘빨갱이’라는 극언을 내뱉었다. 냉전의 끝자락에 매달린 마지막 단말마에 굳이 정색하고 대응할 필요까지는 없겠다.

다만 이념의 적대를 지우겠다면 ‘반독재’ 투쟁을 아직도 ‘반국가’ 프레임에 묶어놓은 시대착오부터 풀어야 한다. 군사독재 반대운동을 친북으로 옭아맨 30여년 전 영사증명서처럼 여권 발급조차 거부하는 건 현 정부의 책임이다. 29일 방일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통련의 누명을 꼭 벗겨내기 바란다.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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