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에디터 지난 5월3일 박상기 법무장관은 경기도 수원검찰청에서 “검찰이 직접 수사에 집중할 경우 기소를 해야 한다는 심리적 강제를 피하기 어렵고, 직접 수사에 착수한 순간 검사(기소관)로서의 객관 의무보다는 일방 당사자(수사관)로서의 지위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며 “이런 구조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소권 행사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박 장관의 발언은 검사가 직접 수사를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을 잘 지적했다. 우리가 흔히 ‘사또 재판’이라고 부르는 전근대 형사 사건의 처리 절차에선 중앙의 형사 관리나 지방관이 수사와 기소, 재판을 모두 맡았다. 심지어 ‘친국’이라고 해서 왕이 직접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사또 재판’의 위험성을 통제하기 위해 근대 사회에선 행정부에서 사법부를 떼어냈다. 권력자의 자의적 처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또 형사 처리 절차에서도 수사(경찰)와 기소(검찰), 재판(법원)을 분리했다. 따라서 기소가 본분인 검사가 직접 수사까지 하는 것은 근대 형사 절차상의 ‘권한 분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선 사법부가 행정부에서 독립한 일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공화국 때 이승만은 경쟁자 조봉암을, 유신독재(4공화국) 때 박정희는 이른바 ‘인혁당’ 관련자 8명을 사법부를 통해 살해했다. 사법부가 행정부에서 실질적으로 독립돼 있었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 논란 중인 검-경 권한 조정도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 박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면 기소 단계에서 잘 걸러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경찰이 수사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의 불기소율은 2007~2017년 21.8~30.5%였지만, 같은 기간 검찰이 직접 수사한 인지 사건의 불기소율은 4.7~14.4%로 이보다 훨씬 낮았다. 검찰이 수사를 하면 90%가량 기소되는 것이다.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기소할 만한 중요 사건만 수사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명했다. 실제로는 경찰의 수사는 검찰이 거르지만, 검찰의 수사는 아무도 거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소 단계에서 한번 더 판단을 구하고 싶은 형사 피의자에겐 불리한 일이다. 이렇게 수사와 기소 권한을 검찰에 몰아놓으면 권력자가 형사 절차를 통해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할 때 효율적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봤듯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검찰을 통해 정치적 반대자를 한방에 재판까지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권력자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에 모두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더 번거롭고 어렵다. 그래서 수사와 기소 권한을 분리해야 한다. 수사·기소의 분리는 재판 전 구속과 같은 사전 처벌이 만연하는 것도 줄일 수 있다.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 않으면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더 엄격하게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3~2015년 사이 경찰이 신청하고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의 기각률은 15.6~19.0%였지만, 검찰이 직접 청구한 구속영장 기각률은 23.4~26.2%로 더 높았다. 검찰 단독으로 청구할 때보다 경찰 신청, 검찰 청구 때 더 신중하게 판단된 것이다. 한국에선 구속 수사가 수사기관의 편의나 ‘국민정서법’에 따라 남용돼 자유 재판을 받을 기본권을 침해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피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유죄 판결이 아니라 재판 전 구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간 쌍방이 다투는 재판과 달리, 수사 초기의 구속은 피의자가 감당하기 어렵다. 구속되면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또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으면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불법적인 피의 사실 공표도 막으려 할 것이다. 검찰의 독립적인 기소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검찰에서 수사받다가 목숨을 끊은 사람이 100명이 넘는데, 구속영장 청구와 피의 사실 공표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검찰의 행위도 바로 이것이었다. 이렇듯 검찰의 직접 수사를 금지하는 일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아주 핵심적인 요소다.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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