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2개 자율형사립고 학부모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에서 서울시교육청 앞까지 행진을 한 뒤 자사고 재지정 방침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의 대표적 학교개혁 모델인 덴마크의 프리스콜레 교사 출신 교육 관계자들과 함께 국내 혁신학교 현장을 살펴본 적이 있다. 활기 넘치는 수업, 자발성을 중시하는 프로그램, 학교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마주하면서 마치 초기 프리스콜레를 보는 것 같다며 감동스러워했다. 한국 교육에 대한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찬사들과는 묘하게 결이 달랐다.
우리 교육에 대한 국제사회 찬사의 대부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순위나 높은 대학진학률, 우수한 교사 집단이라는 외형에서 온다. 20~30%를 넘나드는 공립학교의 만성적인 장기 결석률과 높은 중퇴율로 ‘중퇴의 나라’라는 오명을 쓴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는 부러운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외피 속에 장전된 모순과 고통을 가까스로 견디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다.
자부심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 나온다. 직선 교육감과 함께 등장한 교육 의제들이 개혁을 이끌어왔다. 무상급식은 모든 영역의 보편복지 담론으로 확장됐고, 학생인권은 약자와 소수자 인권과 연결됐다. 입시특화학교가 된 ‘리틀 스카이’ 자사고와 외국어고 대신, 국민 다수가 다니는 일반 학교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 현장의 실천과 손을 잡았다.
그 핵심에 혁신학교가 있다. 혁신학교는 자사고·외고처럼 정의된 ‘학교 체제’가 아니다. 행복한 교육에 대한 열망과 실천을 품은 이들이 모여 존엄과 자치의 교육민주주의 실현을 꿈꾸는 학교다. 자사고·외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한 ‘선발효과’를 기반으로 경쟁을 극대화해 입시 명문으로 등극하고자 할 때, 혁신학교는 교육 소외가 큰 곳을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는 배움에 기반한 교육효과를 살리려고 애썼다.
연구 결과들은 자사고·외고 학업성취도 효과의 상당 부분이 선발 효과와 학생의 배경 요인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는 학교’라는 학력 부진 프레임으로 혁신학교를 가두려 하지만, 입학 성적과 경제 수준 등의 변수를 적용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혁신학교의 성취도 향상 정도가 더 크다는 것도 밝혀낸다. 혁신학교 졸업생의 특징은 ‘주체성’이며 ‘행복하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학교’라는 기억을 공유하고 있음도 보고한다. ‘학교’ 하면 떠오르는 관료적 따분함을 벗고 새로운 학교문화 구축의 정도를 측정하는 학교 민주주의 조사 결과 또한 혁신학교가 더 높은 지수 값을 나타낸다.
교육은 그 어느 분야보다 개혁 저항이 거센 영역이다. 변화의 시대를 담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혁신정책은 지지보다 우려와 반발을 크게 부른다. 혁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학창 시절 향수에 기대거나 승자독식의 차별을 정당화한 기존 교육 문법을 옹호하는 이중적 태도가 적잖다. 최근 자사고 사태에서 보듯이 기득권 집단과 기성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고하다.
대학의 학벌체제는 고교서열화를 부르고, 이는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의 사교육 경쟁으로 이어져 나이와 학년의 교육적 질서를 해체한다. 학생들은 <스카이 캐슬>의 ‘예서 책상’에 갇히고 교육의 공공성은 파기되고 불평등은 심화된다. 이 힘겨운 악순환을 끊어낼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유럽 국가의 ‘포용복지·평등·평화·혁신’의 가치를 배워서 알리고 싶다고 했다. 출발 단계에서부터 불평등과 특권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온 교육체제가 그 기반이라는 것도 살폈을 것이다. 교육개혁에 대한 정부의 좌고우면은 개혁 의지를 의심케 했다. 수능 절대평가 추진,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 혁신학교 확대에 담긴 대통령의 공약은 교육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맞물린 개혁의 맥락이다. 슬그머니 잃어버리려 한 교육개혁의 나침반을 교육감들이 다시 쥐여주고 있다. 당혹해하면 안 된다. 원래 자기 것이었다.
안순억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