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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혁신 저널리즘’이 필요한 이유

등록 2019-06-23 17:15수정 2019-06-23 19:30

(MBC)  누리집 갈무리.
(MBC) 누리집 갈무리.

지난 4일 문화방송 <피디수첩>은 ‘로또분양의 배신’ 편을 통해 공공택지 아파트 분양가 실태를 고발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그리고 시청 후 다섯번 놀랐다.

첫째, 아파트 분양가는 시군구청장이 분양가 심사위원회를 꾸려 결정하는데, 일부 지역에서 시공사 직원들이 들어가 이른바 ‘셀프 심사’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게 말이 되는가.

둘째, 각 지방자치단체의 분양가 심사위원 선정, 본심사 등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이뤄진다. 전국 지자체 228곳 가운데 분양가 심사위원을 공개하는 곳은 채 10곳이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정보공개법을 만든 나라에서 이게 말이 되나.

셋째, 국토교통부는 분양가에서 의심스러운 대목이 발견됐는데도 지도·감독을 지자체에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지방분권이 실속 없고 귀찮은 것만 지자체에 떠넘기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입증해주겠다는 뜻인가.

넷째, 방송 뒤 다른 언론들이 한걸음 더 들어간 취재를 해서 기사를 내보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관련 기사가 드물었다. <굿모닝충청>의 지유석 기자가 쓴 기사만 돋보였을 뿐 이렇다 할 후속 논의가 없었다. 부동산 광고가 언론의 주요 밥줄이라곤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다섯째, <피디수첩>은 분양가 심사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모범 사례로 전주시 행정을 소개했는데, 나는 전주시민이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구독하는 지역 신문은 늘 전주시 행정이 엉망진창이라는 식의 비판으로 일관할 뿐 전주시가 잘하는 일을 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자체와의 유착 못지않게 적대관계도 문제 아닌가.

이 사건은 ‘혁신의 전파’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우선 <피디수첩>이 지역 행정의 어둡거나 무책임한 면을 고발하는 동시에 모범 사례를 발굴해 제시한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자세를 유지해주길 기대한다. 우리는 혁신을 기술이나 기업의 관점에서만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말단 공무원이 소관 업무에서 시민의 이익과 편의를 증진하는 데에 기여하는 작은 개선 하나도 혁신으로 간주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관료주의의 무사안일을 싸잡아 비판하는 방식으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작은 개선이 널리 전파되고, 그에 따른 보람이 생겨날 때 경쟁적인 혁신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면서 관료주의가 깨져나갈 수 있다.

언론은 그런 작은 혁신의 전파자가 되어야 마땅하겠건만, 눈에 번쩍 띌 만한 큰 혁신의 경우를 제외하곤 그런 일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특히 일부 지역 언론은 혁신보다는 연고주의에 중독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보도하는 고정 뉴스거리 중 하나는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부각하는 것이다. 낮은 곳에서 지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겐 별 관심이 없다.

지역 현안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그 지역 출신이 정부나 공공기관은 물론 대기업 고위직에 오르면 지역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상세히 보도한다. 정부의 인사가 있을 때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자기 지역 출신의 수를 세기에 바쁘다. 그 수가 많으면 곧 지역발전이 이루어질 것처럼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고, 적거나 없으면 ‘지역 홀대론’을 내세우곤 한다.

그동안 나를 포함한 지역 언론학자들은 줄기차게 지역 언론의 변화를 역설해왔지만 지역 언론엔 변화의 뜻이 없다는 게 이젠 분명해졌다. 물론 올곧게 열심히 하는 지역 언론한테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대체적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일부 기자들은 변화를 열망할망정 그 열망은 언론사 소유주의 경영 이유와 부합하지 않기에 수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바뀔 수 없는 기성 언론을 대상으로 한 비평과 비판에 집중해야 하는가. 디지털 혁명으로 ‘1인 미디어의 시대’가 왔다는 건 괜한 말이었나.

언론학자 유용민이 최근 논문에서 역설한 ‘뉴스 스타트업을 비롯한 다양한 저널리즘 창업 기획’이 대안이다. 기성 언론을 대상으로 쏟는 시간과 노력을 청년들이 주체가 되는 ‘뉴스 스타트업’의 생존과 성공을 위한 방안 모색으로 돌려야 한다. 지자체를 괴롭히는 일부 인터넷언론의 횡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고발해 바로잡는 것도 ‘뉴스 스타트업’의 구실이다. 우리는 지방엔 혁신을 지향하는 지역 뉴스 수요가 없다는 미신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그걸 한번도 공급한 적이 없잖은가. 혁신을 존재 근거로 삼는 저널리즘을 지지하고 지원하기 위해 지역 대학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나부터 애써 보련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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