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 연구자 양현석은 나에게 오랫동안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군이었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무너진 공교육 현실을 정통으로 비판했고 세 멤버 모두 대학에 가지 않았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기성세대의 문법에 따르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삶을 멋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검열에 반대해 ‘시대유감’을 불렀고 정직한 사람의 시대는 갔다고 포효했으며 발해를 꿈꾼다며 통일을 노래했다.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 한 시대가 저물었다고 다들 이야기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라가 망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당시 직격탄을 맞은 건 여성들이었다. 대졸 여성들의 일자리 자체가 줄었고 여성 일용직은 급증했으며 여초 직종인 서비스직 노동 환경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불법파견이라는 삼중고를 견뎌야 하는 자리로 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여성의 위기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회는 그 목소리를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책임마저 전가했다. 당시 지면과 화면에 등장한 남성 전문가들은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비법으로 ‘남편 기살리기’를 제안했고 아내들은 실제로 단체를 만들어 남편 기살리기 운동을 했다. 아이들은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를 불렀다. 저항정신을 내세우던 로커와 래퍼도 고개 숙인 아버지의 쓸쓸함을 그리며 부모님 말씀을 거역한 불효자인 자신을 반성했다. 위기를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되살아난 건 가부장을 살리고 그 아래 가족끼리 똘똘 뭉쳐 가족할인으로 묶이는 신가족주의였다. ‘아이들’이었던 양현석은 패밀리를 결성해서 돌아왔다. 1999년은 한국의 대중음악계에 본격적으로 패밀리라는 이름이 등장한 해였다. 와이지(YG) 소속 아티스트들은 양현석의 말투를 흉내 내고 그와 나눴던 대화를 전달하며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단순히 비즈니스를 넘어선 유사가족 공동체라는 점을 이야기하곤 한다. 양현석은 그렇게 아이들에서 아버지가 되어갔다. 버닝썬 사태 이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기자에게 내사 종결될 것이라고 자신한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성접대 결백, 내 새끼 승리 믿었다”며 이 유사가족 공동체의 가장의 위치에서 대중들에게 읍소한다. 그는 가족의 명예를 위해 아들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고개 숙인 아버지처럼 굴었지만 그가 바로 성매매 알선 의혹의 당사자라는 점은 교묘히 감춰졌다. 승리는 “한명당 천만원” 등 구체적인 문자 증거가 나왔는데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양현석은 성매매 알선 등이 이루어진 현장에 동석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싸이도 소환되어 조사받았지만 그 누구도 아직 구속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경찰은 명운을 걸고 전력을 다한다고 한다. 하지만 돈은 대부분 현금으로 지불되었을 것이고, 모두가 범죄자가 되는 현행 성매매특별법에서 증언을 해줄 여성을 찾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언제나 이런 방법으로 소위 ‘성접대’라고 불리는 성매매 알선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끝나버렸다. 클럽 버닝썬의 폭행 피해자 김상교씨는 도리어 가해자로 기소되었다. 가해자로 몰렸으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적극 나서야 할 터인데 그는 돌연 입을 다물겠다고 선언했다. 상식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다행히 여론은 아직 잊지 않았다. 대학가에서는 와이지 소속 가수들을 초청하지 말라며 항의 성명이 나오고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가 소속사를 나오길 바란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론과 팬덤만이 희망이 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을 먹여 살려온 게 소녀 팬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모든 사태는 정말 엄청난 배신이 아닌가. 연예기획사들이 시스템을 갖추고 주식회사가 되면서 인신매매, 성매매, 마약 등 소위 어둠의 세계와는 단절된 줄 알았다. 하지만 버닝썬에서 드러난 범죄 의혹들은 약물강간과 미성년자 납치 감금 및 집단강간 및 폭행 등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해졌다. 양현석이 패밀리를 통해 남기고자 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이런 랩을 들려주고 싶다. “백색가루에 뻗친 끝이 없는 욕심, 너 모르게 죽어갔던 아비를 지켜본 어린아이 눈 속에 비친 너의 개만 못한 짓이여. 이제는 끝이여. 자, 다음 차례 여자들을 팔아넘겨 배 채운 돼지여. 남자란 힘을 잘못 쓴 그대여. 썩은 내 그 목구멍 속에 넘어간 인생….” 너무 심한가. 놀랍게도 이는 1999년 발표된 ‘우리는 Y.G. 패밀리’의 가사고, 작사가는 바로 양현석이다.
이슈버닝썬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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