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코인데스크코리아 부편집장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는 두달 전 백서가 나올 때의 맹렬한 기세는 어디 갔는지 침묵 중이다. 페이스북은 여전히 이용자 정보 보호 책임으로 공격받고, 규제당국의 강한 견제에 리브라연합 창립회원의 탈퇴설도 나온다. 누군가는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어차피 실제 론칭보다는 독점 및 이용자 데이터 남용 논란을 피해가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 폄하한다. 리브라 논쟁이 모든 것을 덮는 듯했던 한때를 생각하면 맞는 말인 듯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리브라가 살아날 가능성도 커 보인다. 바로 중국 때문이다.
호지욕출(呼之欲出). 부르기만 하면 이내 달려 나올 것이란 뜻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무창춘 지불결산국 부국장이 지난 10일 언급한 이 표현이 세계 금융권과 정보기술(IT) 업계를 뒤흔들었다. 달려 나올 주인공은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다. 곧, 중국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시비디시)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출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2017년 공산당전국대표대회(19차 당대회)를 통해 채택된 ‘디지털 경제 등 신흥산업의 왕성한 발전’ 노선이 금융권의 시비디시 관련 논의에 박차를 가했다. 관계자들의 설명과 그동안 신청된 특허 내용 등을 종합하면 중국의 시비디시는 ①넓은 의미에서의 통화(M2)가 아니라 본원통화(M0)를 대체하며 ②전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 중립성’을 추구하고 ③인민은행으로부터 발행받은 은행 등이 다시 일반 이용자들에게 발행하는 이중구조를 취하며 ④개인 이용자들은 거래 은행에서 신원을 확인한 뒤 시비디시 지갑을 발급받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더욱 주목받는 것은 중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위안화 국제화’가 시비디시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근래 중국 매체를 보면, 중국 시비디시가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대안을 제시할 것이며, 이미 디지털 결제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중국의 기술이 이를 성공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국제사회도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긴장하는 모양새다. 미국 암호화폐 업계에선 중국의 시비디시가 서구식 금융제도를 우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영국의 중앙은행 총재는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이 함께 지원하는 디지털통화가 나온다면 미국 달러의 무역 결제 수단 등 지위를 대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리브라가 대책이 되지 않을까? 마침 리브라는 미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리브라연합이 이끌고 있다. 현재로선 미국과 서구권을 대표하는 디지털화폐인 셈이다. 페이스북이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미국 연준(Fed) 또한 민간기업임에도 중앙은행 구실을 한다. 암호화폐를 비판하며 ‘미국 달러 만세’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제 말을 바꿔 ‘미국 기업이 만든 디지털화폐 만세’라 할지 모를 일이다.
다시 중국의 재대응을 보면, 디지털판 미-중 통화전쟁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리다오쿠이 칭화대 교수는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주요 기업들의 리브라연합 참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왠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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