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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조국, 검찰, 그리고 개혁

등록 2019-08-28 17:49수정 2019-08-28 19:12

검찰로서는 ‘정권 충견’ 프레임을 깨고 ‘정치 중립’ 검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조국=검찰개혁’이란 열쇳말을 빼놓고는 전격적인 수사 착수의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 수사가 검찰개혁과는 무관하다”는 검찰의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8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의 수사가 개시되어 당황스지만 저희 가족들은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소아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8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의 수사가 개시되어 당황스지만 저희 가족들은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응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백소아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거취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두편으로 갈려 격렬하게 부딪히는 와중에 돌연 검찰이 뛰어들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장관으로 오더라도 ‘계속 칼을 겨누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시다. 정치권과 국민들이 찬반으로 맞서던 상황에서 검찰까지 끼어들어 최소한 3차함수 이상 복잡한 게임으로 진행되게 생겼다. 아니,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여야 정치권이나 언론 다 제치고 검찰이 유일무이한 심판관으로 칼자루를 쥐게 됐다.

‘조국 의혹’은 후보자 지명 이래 지금까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론의 관련 기사만 2만3천건에 이른다는 분석까지 있다. 가히 대선주자급 ‘예우’다. 후보자 쪽이 기자들에게 해명자료 보낸 것만 30여차례, 의혹과 해명의 진위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버거울 정도다. 유력 언론들의 보도라고 해서 그대로 믿기도 어렵다. ‘학부모 연계 인턴십’의 일환으로 실시됐다는 사실은 누락한 채 ‘장 교수 논문 고교생 참여자 조국 딸이 유일’ 운운하는 식의 함량 미달 기사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딸의 장학금처럼 ‘특혜’ 비판을 받고 있는 ‘국민정서법’ 위반 사안들은 심각하다. 검찰이 조 후보자 가족들을 출국금지하고 전방위로 압수수색한 걸 보면 사학 재단이나 관련 기업, 사모펀드 등 다른 의혹들과 관련해 일부 불법의 단서를 포착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앞으로 수사 내용이 속속 ‘언론 중계’ 될 수는 있겠으나 검찰이 9월2~3일로 예정된 인사청문회 전까지 결과물을 내놓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사퇴 요구는 커질 것이다. 현 상황을 ‘개혁’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단 임명은 강행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러면 법무장관의 운명을 검찰이 좌우하는 기이한 상황이 전개된다. ‘개혁’하겠다고 나선 장관의 명줄을 개혁 대상이 틀어쥐는 관계 역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검찰은 애초 고소고발 사건 담당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수사를 맡겼다가 ‘처벌’을 전제로 한 공격적 수사가 주특기인 특수2부에 재배당했다. 게다가 청문회까지 불과 일주일을 기다리지 않고 압수수색에 나섰다. 왜 그랬을까.

검찰 수뇌부의 내밀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으니 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윤석열 검찰’에 대해 보수 언론·야당은 줄곧 ‘정권의 충견’이란 프레임으로 매도해왔다. 국정농단·사법농단 수사 자체를 그런 식으로 내내 조롱했다. 검찰 인사와 무더기 사표 이후 제기된 ‘코드 인사’ 비난 역시 청와대는 물론 윤 총장을 겨냥했다. 그러던 차에 직전까지 검찰 인사를 주무르던 정권의 핵심 실세이자 개혁의 ‘저승사자’가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검찰로서는 ‘정권 충견’ 프레임을 깨고 ‘정치 중립’ 검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공개 발언도 훌륭한 방패막이가 돼줄 것이란 계산도 했을 법하다.

그러나 국회의 청문회 절차를 무력화하고 임명권자의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비판까지 감수하겠다는 상황이라면 그 정도 설명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당장 ‘정치개입’ 논란이 불거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수사 주체 교체와 압수수색 시점도 예사롭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조국=검찰개혁’이란 열쇳말을 빼놓고는 전격적인 수사 착수의 배경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장관 ‘후보자’에게 검찰 수사는 결정타다. 설사 취임해도 ‘개혁’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과거 검찰개혁 실패의 기억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 시절 대선자금 수사에 나선 검찰은 현직 대통령 측근들까지 줄줄이 구속하며 ‘국민총장’ ‘국민검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바람에 검찰개혁은 물건너갔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에도 모처럼 여야가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대검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신설에 의견을 모았으나 대검 중수부가 부산저축은행 수사에 나서면서 개혁은 일단 좌절됐다. 검찰개혁 국면마다 여론을 뒤흔드는 대형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입법에 적극적인 의원들을 겨냥한 수사 시도가 이어졌다.

윤석열 검찰이 이런 시대착오적 시나리오를 추진 중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검찰 역시 이번 수사가 “검찰개혁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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