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계급 문제로 번지고 있다. 강남좌파는 다를 줄 알았는데, 좌파나 우파나 강남은 똑같다는 여론이다. 특권계급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심상치 않다. 나는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아버지는 고졸 자영업자였다. 내가 태어난 1991년부터 재작년 돌아가실 때까지 자동차 부품 대리점을 운영하셨다. 덕분에 나는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업에 집중했다. 강원중학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2007년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강남사회에 편입됐다. 민사고 12기 국제반에서 강원도 출신은 나 혼자였다. 학교가 강원도 횡성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절대다수가 강남에서 왔고, 분당이나 목동, 일산에서 온 친구도 있었다. 의사, 변호사, 교수, 대기업 임원 자녀가 많았다. 영어의 장벽이 높았다. 일찍이 해외 경험을 한 친구들이 확실히 유리했다. 교수 안식년이 뭔지, 대기업 주재원이 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신분 격차가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 전원 기숙사 생활에 한복을 입으니 비슷비슷했다. 친구 따라 타워팰리스에 가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우리 집도 춘천에선 넉넉한 편이었다. 그러나 강남에 아파트가 있느냐 없느냐의 구분은 엄연했다. 단순한 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맥과 정보의 차이였다. 대학 입시를 위해 어떤 과외 활동이 좋은지 알아야 했다.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간 친구,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일한 친구도 있었다. 연구실, 로펌 인턴은 흔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특권층이라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자기소개서에 밴드 활동을 한 이야기를 썼다. 자작곡 음반을 원서에 첨부했다. 2010년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비로소 유학생 및 교포사회에 편입됐다. 아이비리그 한인 중 나 같은 한국 고등학교 출신은 소수였다. 조기유학생과 교포 2세들이 주류였다. 서울국제학교, 서울외국인학교, 한국외국인학교 친구들도 만났다. 재벌과 준재벌이 보였다. 본가가 아예 외국이거나, 서울에 살면 한남동, 평창동, 성북동, 이촌동 등 강북에 살았다. 최소 삼대가 부자였다. 나는 차원이 다른 장벽을 마주했다. 민사고 동창 중 그 정도 집은 없었다. 대원, 용인, 한영외고에 다니던 친구들도 비슷했다. 전문직 자녀가 대부분이었고, 다들 살벌하게 공부했다. 부의 대물림이 학력 대물림의 형태로 이뤄져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의사, 교수, 변호사, 대기업 임원이라고 자식도 그리되란 법은 없었다. 그러나 재벌급은 달랐다. 학력이 필수라기보단 품위 유지였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허구다. 서울에서 그런 저택에 사는 집안은 삼대 의사가문을 만들려고 바둥대지 않는다. 서울대 의대보다 아이비리그를 선호한다. 대치동 학원가를 전전하지도 않는다. 입시전쟁을 피해 보딩스쿨이나 국제학교를 보낸다. 학업 성적이 미진하면 스포츠나 예술로 스펙을 쌓는다. 현실 속 예서는 강남 아파트에 산다. 강북 저택에 사는 진짜 부자는 세습을 위한 교육이 절실하지 않다. 의전원, 로스쿨, 박사 과정 안 가도 계급을 유지할 수 있다. 좌파나 우파나 결국 강남이 문제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경제계급은 정치진영을 초월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특권계급을 비판할 때는 더 예리해야 한다. 스카이캐슬 위에 ‘아이비캐슬’이 있다. 강남좌파 위에 강북재벌이 있다. 현 정권 인사들이 자신의 특권에 둔감한 것은 그 위에 더한 특권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국 후보자에게 가장 분노하는 청년들도 서울대, 고려대 등 상위권 학생들이다. 우리 모두 위만 쳐다보고 있다. 계급적 박탈감이란 늘 상대적이다. 민심은 결국 어떤 계층의 박탈감을 헤아려야 하는지 아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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