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지금 최대 현안은 일본의 경제보복 및 그 대응 과정에서 불거진 한-일, 한-미 갈등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다. 임기의 절반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개혁 동력에 큰 영향을 줄 사안들이다. 정권의 안정성과 정책 기조를 가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2~3일 열기로 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무산되면서 조국 후보자 문제는 찬반 진영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 됐다. 문 대통령으로선 일부 민심 이반이 있더라도 조 후보자를 임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장관 임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개혁이라는 당위다. 극심한 여야 대립과 여론의 동요 등으로 개혁 동력이 떨어진다면 나라 전체의 불행이다. 한-일, 한-미 갈등은 성격이 다르다. 정부가 경제보복 대응책의 하나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밝힌 것은 명분에 맞고, 뒤틀린 외교안보 정책 기조를 재설정할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타당하다. 미국의 반발에는 한-미 동맹의 성격에 대한 일방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지금의 한-미-일 안보협력 구조는 미국과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만든 ‘2015년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밀어붙인 미국 정부는 마침내 2015년 4월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19년 만에 개정해 일본 자위대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앞서 두 나라는 여러 해 동안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엠디) 체제 구축을 비롯해 군사 일체화를 심화했다. 미국은 강화된 미-일 동맹 속에 한-미 동맹을 끌어들여 사실상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가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굴복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다. 이런 정지 작업을 거쳐 2016년 7월 한·미 당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주한미군 배치를 발표하고, 11월에는 지소미아를 체결한다.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한-미-일 군사 일체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책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름을 바꾼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맹이 아니며 앞으로도 일본의 체제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동맹이 될 수 없다. 일본 군대가 다시 한반도에 발을 내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진실 규명과 진솔한 사과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가 아니며, 중국 봉쇄를 위한 도구가 돼서도 안 된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미·일이 짠 2015년 체제로 급하게 들어갔다. 이런 ‘외교안보 적폐’는 대북 군사대결 우선론과 결합해 이후 적잖은 혼란과 갈등의 원인이 됐다. 위안부 합의 폐기에 이어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2015년 체제 이전 상태로 반쯤 돌아가는 것과 같다. 어렵게 이 체제를 만든 미국이 ‘불만, 우려, 유감’을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목적과 내용이 다르다. 미국으로선 한-미-일 군사·안보 일체화가 패권 유지·확장을 위해 효율적이겠지만,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이를 잘 아는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인 2017년 10월 ‘안보 3불’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엠디 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틀에서 보면 지소미아는 좋은 한-일 관계를 전제로 한 제한적 의미를 지닌다. 지소미아 종료를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 행동과 연결하는 것은 원칙에 부합한다. 우리 국익에 딱 들어맞지 않는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을 위해 과거사 문제를 서둘러 봉합하려 한 이전 정부 선택이 더 큰 문제다. 조국 후보자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다. 어떤 경우에도 검찰개혁이라는 원칙을 포기해선 안 된다. 한-일, 한-미 갈등은 어느 정도 예상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미국 정부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나라들에 대해 그렇게 하듯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적당한 갈등이 있어야 양쪽을 다루기 좋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리와 3국 안보협력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대일, 대미 관계에서 흔들린다면 더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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