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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작두 위에 올라탄 검찰

등록 2019-09-04 18:42수정 2019-09-05 08:59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할 사안에 검찰이 칼을 빼 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기 쉽다. 검찰은 고위공직자 후보의 ‘도덕’과 ‘염치’에 대한 ‘국민적 판단’을 구할 사안을, ‘불법’과 ‘탈법’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들이대겠다고 나섰다. ‘조-검 대결’의 결말이 어떻게 나든 검찰 수사는 두고두고 개운찮은 뒷맛을 남길 것이다.
김종구
편집인

제15대 대통령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97년 10월,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 쪽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67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며, 김 후보를 조세포탈 및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전국고등검사장 회의를 열어 수사 개시 여부를 논의했으나 신중론과 강행론이 팽팽히 맞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이 사태는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전격 발표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래픽 박향미 기자,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그래픽 박향미 기자,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보면 당시 검찰의 수사 유보는 너무나 당연한 해답이었다. ‘비리 의혹 수사는 어떤 성역도 없어야 한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 명제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특히 국민의 판단에 맡겨야 할 사안에 검찰이 칼을 빼 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기 쉽다. 훗날 김태정 검찰총장은 “(당시 수사에 착수했다면) 호남에서 민란이 터졌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민란 발발’ 여부를 떠나 유권자의 선택을 앞두고 검찰이 정치적 사건에 끼어드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다.

같은 맥락에서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것은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결정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한 말이 수사의 정당성 근거로 거론되지만, 그 말이 이번 경우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말한 것도 ‘권력형 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였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하는 수사는 주로 조 후보자의 과거 교수 시절에 벌어진 일들이다. 사모펀드 문제 정도가 청와대 민정수석 취임 이후의 일이지만, 이 역시 명백한 ‘권력형 범죄’ 혐의가 드러나 수사에 착수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도덕의 문제이지 법의 문제가 아니다.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 장학금 수혜 등등을 통해 나타난 특권과 특혜, 조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 등에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고위공직자 후보의 ‘도덕’과 ‘염치’에 대한 ‘국민적 판단’을 구할 사안을, ‘불법’과 ‘탈법’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들이대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검찰이 수사까지 착수하는 상황에 이르면 후보자가 더는 못 견디고 사퇴하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졌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반적 예상도 빗나갔다. 조 후보자는 ‘수신제가’를 하지 못한 부분은 사과하면서도 ‘치국’을 위해 양해해 달라며 버티고 있다. 조 후보자의 이런 모습, 그리고 이번 사태에 대한 임명권자의 태도 등 공직자 임명을 둘러싼 전 과정은 국민의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것이 정치 과정이다. 검찰이 섣불리 끼어들 수 없는 대목인 것이다.

검찰은 조 후보자의 국회 기자간담회가 끝나자마자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임전무퇴’의 결의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아 줄 곳은 검찰뿐”이라며 “(조 후보자는) 시퍼런 작두 위에서 춤추는 선무당처럼 내려올 수도 없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더 날카롭고 위험한 작두 위에 올라탄 것은 오히려 검찰인 것 같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에 기를 쓰고 반대하던 세력이 “믿을 사람은 윤 총장뿐”이라고 응원을 보내는 반면에 윤 총장 지명에 박수갈채를 보냈던 많은 사람이 이제는 그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역설적인 상황이 지금 검찰이 처한 처지를 웅변한다.

‘조-검 대결’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워낙 많은 변수가 잠복해 있어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칼날 위의 위험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검찰의 특성상 이미 빼 든 칼을 칼집에 도로 넣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검찰이 조 후보자가 직접 관여한 불법행위를 밝혀내 기소를 할 정도가 돼야 하지만 수사 양상은 그런 차원을 벗어나 흘러가고 있다.

결말이 어떻게 나든, 검찰의 이번 수사는 두고두고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게 돼 있다. 앞으로 주요 공직 후보자에 대해 고발이 들어오면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검찰이 먼저 수사를 해야 할 상황이 돼버렸다. 무엇보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검찰공화국’의 의미를 다시 썼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은 검찰이 정치권력과 야합해 나라를 자신들의 세상으로 바꿔놓았다는 뜻인데, 검찰은 아예 독자적인 ‘정국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섬으로써 ‘검찰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래저래 검찰 개혁의 실행은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됐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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