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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순억의 학교 이데아] 무엇이 교육의 공정성을 해치는가

등록 2019-09-15 16:51수정 2019-09-16 12:42

안순억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중국의 대입시험인 가오카오(高考)는 입신양명을 위한 ‘전사’들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드론을 띄우고 안면인식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인도의 수능인 매트릭(Matric) 시험장에서는 부정행위 때문에 양말과 신발을 신지 못한다. 카스트 제도가 작동하는 인도에서 계층 상승의 수단인 입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감독관 매수와 커닝을 경험한 수험생이 60%를 넘고 9천명의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미국 또한 ‘아수라장’ 풍경이 곳곳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코디’를 해주는 컨설턴트가 성업 중이고, 하버드대 합격 땐 무려 12억원의 성공보수가 이들을 기다린다.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에 인종별 보정 점수를 주어 불평등을 보완하지만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린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들 나라는 공통점이 많다. 수능 점수 한방으로 대학을 결정하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든 결과는 다르지 않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극심하고 학벌이 계급으로 연결되는 사회다. 계층 이동의 유일한 수단인 교육 사다리는 바늘구멍만하고 자녀의 학벌과 전문자격증은 지위와 부를 대물림하는 가장 ‘공정’한 수단이다. 당연히 경쟁은 극단으로 강화되지만 출발선이 다르니 결과의 불평등은 예상대로다.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의 분노는 특권과 불공정을 향한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공정’을 강화하는 정책을 도입할수록 ‘특권과 불공정’이 강화되는 모순과 악순환이 반복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의 ‘특별한 교육 이력’ 논란으로 여름이 내내 무더웠다. 정의에 대한 기준은 ‘교육과 계급’을 두고 날카로워졌다. 합법적 특권에 동의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분노도 거셌다. 급기야 법무부 장관 임명식에서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대통령 담화가 나왔다. ‘제도에 내재된 불공정과 특권적 요소까지’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단호했다. 그러나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 마련 과정에서 확인한 것처럼, ‘노답’ 입시제도를 두고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반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먼저 왔다. 특권과 불공정의 근원을 다스리기보다 ‘공정’과 ‘여론’의 힘에 밀려 교육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터져나왔다.

보통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가 일류대를 나온 강남 사는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관료의 자녀들과 공평한 기회를 갖기는 어렵다. 조국 장관에게서 느낀 상실감은 ‘설마 당신까지’에 대한 탄식이 크지만,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세간의 자녀교육 성공 조건은 여전히 비법이다.

여론은 현행 입시제도를 ‘복잡한 금수저 전형’의 표적으로 삼고 수능 확대에 마음을 싣는다. 그러나 입시제도 개선만으로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수능 비율을 높일수록 초중등 교육이 왜곡되고 계층별 격차가 심화된다는 것은 ‘팩트’다. 복잡한 제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계층과 이들을 대변하는 보수 언론과 정치 세력이 이런 논리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는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입시와 교육개혁은 복잡한 함수다. ‘부분 진실’이 ‘전체 거짓’이 되고, ‘개별과 단기 이익’이 ‘전체와 장기 손실’이 되는 근시안을 경계해야 한다. 제도 개혁은 개혁세력과 기성세대의 도덕성과 맞물릴 때 힘을 갖는다. 어떤 제도에서든 지위와 재력으로 얻은 배타적인 네트워크와 정보, 지식을 자녀의 교육과 입시에 ‘불공정’하게 활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과 사회의 지성이 동시에 작동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의 기회로 삼는 이가 많아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내게 먼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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