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부산대 강사 대학 강사들의 대규모 이동은 없었다. 지난여름 전국 대학에서 일제히 진행된 강사 공개 채용은 그동안 인맥으로 강의를 맡기던 관행을 깨고 강사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방대 강사들은 수도권 대학 강사들의 대거 진출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강사법에서는 강사 공채를 간소화된 절차를 따라 진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많은 대학들은 전임교원과 마찬가지로 기초심사, 전공심사뿐 아니라 면접심사까지 했다. 어떤 대학은 강사지원서를 방문 접수만 하게 했고, 또 다른 대학은 대학 소재지의 거주자로 지원 자격을 제한했다. 지원 마감일에 맞춰 애써 멀리 남도의 한 대학을 직접 찾아갔는데, 오전 근무만 한다면서 접수를 마감해 지원을 하지 못한 강사도 있다. 대학은 외부 지원자의 진입 장벽을 높였고, 대학의 폐쇄성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지도교수와 전공 분야 전문가의 추천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 대학도 있었다. 지도교수가 퇴임했거나 별세한 강사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고, 전문가의 추천서까지 요구함으로써 강사의 예속성은 더 심화됐다. 학부 성적증명서를 요구한 대학도 있고,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석사학위 논문 파일을 요구한 대학도 있다. 학부 출신과 성적에 따라 점수를 차등화할 것인가? 서울대는 몇점이고, 부산대는 몇점인가? 점수화하지도 않을 자료를 굳이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의 편견을 강화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하려 한 것인가? 교육부의 강사제도 운영 매뉴얼을 무시하고 사진과 가족사항, 본적 등의 기재를 요구한 대학들도 있었다. 이제는 기업들도 요구하지 않는 정보를 요구함으로써 대학은 스스로 자신들이 시대에 가장 뒤처져 있음을 드러냈다. 국내 대학의 교수들 중에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거의 없다. 따라서 박사학위를 가진 강사도 거의 없는 실정인데, 한 대학의 경제학과에서는 강사 지원 자격을 박사학위자로 제한했고, 이로써 국내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은 씨가 마르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소수 학문을 전공하는 강사들이 대학을 떠나게 되는 것은 교수와 강사의 개인적 친소관계(또는 주종관계)에 의한 공채 탈락보다 학문의 편향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번 공채에서 박사학위 미소지자는 찬밥 신세였고,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대학 밖으로 내몰렸다. 그들이 박사학위가 없는 이유는 단순히 공부를 못해서라고 말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사 공채에서 심사위원들이었던 교수들은 자기 전공과 제자를 우선적으로 챙김으로써 결과적으로 학문의 다양성을 훼손했다. 기득권 동맹은 더 강화됐고, 학문의 다양성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지원 과정에서는 강사들의 불만도 많았는데, 여기에는 강사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도 있는 듯하다. 강사들 중에는 교육계획서를 작성하는 데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이 요구한 교육계획서는 기업들이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것과 유사한데, 이마저도 불필요할 정도로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이 하찮은 일인가? 대학 강사의 계약기간은 비록 짧지만 대학 강의는 그 기간만 하고 그만두는 자리가 아니다. 물론 공개 채용이 없었던 시간강사 시절에는 이런 서류 작성이 필요 없었다. 교수가 불러주기만 하면 그에게 가서 강사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강사 문제의 핵심은 바로 쉬운 고용, 쉬운 해고에 있었다. 이번 강사법 파동에서 가장 비난을 받은 곳은 정부이지만, 정작 강사들에게 대량해고의 칼을 휘두른 곳은 대학과 전임교원들이었다. 대학의 모순에는 제도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문제도 함께 들어 있는데 모든 것을 강사법과 정부 탓으로 돌리면서 그 뒤로 숨는 것은 그저 비겁한 태도일 뿐이다.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건 자연스러운 본능이라 할 것이나, 본능적 행위가 늘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은 우리가 본능대로만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강사법은 대학 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며,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수반한다. 그 변화를 거부하면 모순은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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